길가의 개울에 사는 개구리들은 종종 사람들에게 밟히기도 하고 다른 동물에게 잡혀 먹히기도 했다. 그곳의 한 개구리 부부가 안전하고 아늑한 곳에 살기를 바라며 찾은 곳이 근처의 우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자식 손자까지 생기면서 제한된 공간에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의논한 결과 어느 수에 달하면 몇 마리씩 우물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힘센 개구리 서너 마리가 우물 벽을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도저히 힘에 부쳐 포기해 버렸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아침저녁으로 아낙네들이 떨어트리는 두레박이나 그 줄에 붙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것은 쉽지는 않았지만 그 길밖에 없었다. 위에서 느닷없이 떨어지는 두레박은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는 언제나 공포의 대상이었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두레박을 미처 피하지 못해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두레박을 타고 나가 우물 안의 개구리 수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적이 끊겼다. 아침저녁 떠들썩하던 아낙네들의 소리가 뚝 그쳤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은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그 동네에 상수도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이제 우물을 탈출하는 길은 죽을힘을 다해 벽을 기어오르는 것뿐이었다. 전과 다른 각오로 여럿이 시도 했지만 수직으로 우물 벽을 끝까지 오르는 일은 불가능했다.
마지막 일이 몇 미터를 남기고 사지에 힘이 빠져 아래로 떨어지곤 했다. 결국 개구리들은 탈출을 포기하고 그 안에서 사는데까지 살다가 죽는다는 체념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한 개구리가 우물 벽을 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개구리들은 “헛수고하네” "떨어질 텐데"라며 개골개골하였다. 그런데 벽을 끝까지 올라가 개구리가 반나절 만에 우물 벽을 끝까지 올라가 간신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개골개골 입을 모았지만 그 개구리는 그런 체념의 소리에 상관치 않는 것 같았다. 귀가 먹어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양 이름 치고는 좀 생소하나 2023년 10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헝가리 태생의 노벨 생리의학 수상자 이름 ‘커털린 커리코’이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커리코는 열심히 해 성공하리라 마음먹었다. 유전자 물질리보핵산(RNA)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연구소가 연구비 중단으로 그녀는 유럽 대학의 문을 두드렸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미국행을 결심하였다. 헝가리 정부가 정한 100불 이상의 외화를 가지고 출국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터라 그녀는 딸의 곰 인형에 1,500파운드를 숨겨 미국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그것이 헝가리에서 재산의 전부였다. 템풀 대학을 거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옮긴 그녀는 몇 년의 기회를 부여받아 자기 분야의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과를 보이지 못하자 대학은 전망이 그 분야의 연구를 계속할 경우 교수직에서 계약직으로 강등하고 월급도 절반으로 깎겠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커리코는 그동안 전심으로 추구하던 연구를 포기할 수 없어 그런 수모에도 불구하고 그냥 눌러앉았다.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첨단 과학실험실과 우수한 동료 학자들과의 학문적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던 남편이 이민 비자를 받기 위해 헝가리로 돌아 갔는데 문제가 있어 미국 재입국이 지연되었고 그동안 커리코는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는 어려움에 처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의과대학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는 와이스먼 교수를 만나 협력 관계를 맺게 된 것이 그녀에게는 전환점이었다. 공동 연구로 그녀가 여러 해 집착해 오던 연구 결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두 연구자는 8년의 노력 끝에 외부에서 주입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를 인체가 이물질로 여기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즉 체내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단백질(항원)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몸이 면역 반응을 일으켜 염증이나 다른 부작용을 나타내지 않게 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그 기술을 이용해 보통 4~5년 걸리는 백신을 불과 수개월 안에 만들어 코비드19 면역 주사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에 전 세계적으로 수억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노벨 심사위원회는 저들의 과학적 발견과 동시에그 기술을 이용해 인류를 대재앙에서 구할 수 있었던 공적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약 칠백만 명의 사망자가(2023년 12월 말까지) 발생했다. 만일 커리코와 와이먼의 공동 연구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칠백만의 몇 배 심지어 몇 십 배가 사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약 백 년 전(1918~20)에 스페인 독감은 최소 1,700만명에서 최고 5,000만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추측되고 있다. 그때 세계 인구가 지금의 사 분의 일인 20억에 불과했음을 감안하면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커리코는 자기가 하던 연구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의 연구를 찾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그녀에게 다른 연구로 전환한다면 정식 교수직을 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직하게 한 우물만을 팔것을 고집했다. 헝가리에서 취득한 학위를 가진 여성 이민자로 미국의 한 의과대학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실험 결과의 부진으로 인한 직업적 수모와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 밀어붙였다.
그녀가 주위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포기하라’는 충고였다고 한다. 그녀가 끝까지 집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귀먹은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패배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등장한 인물 중 산 위에 100여 년에 걸쳐 대 홍수를 대비하여 배를 건축한 노아를 지극히 비정상적인 괴인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당시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노아가 귀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들이었다.
중국 속담에 밤에 길을 가는 손님이 동내 개가 짖을 때마다 발을 멈추면 목표지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귀먹은 개구리,‘커털린 커리코’,노아방주 얘기와 겹쳐 그들의 삶에 집념과 우직함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