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진 공수처
해병대원 채상병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의 의혹을 밝히려는 일명 ‘채상병 특검’이 향후 윤석열 정권의 명운을 바꿀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는 보수 언론마저 채상병 사건을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워터 게이트 사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를 ‘탄핵’으로 연결하고 있으니, 빠르게 해결하라고 각종 사설을 통해 압박하고 있다. 야권은 22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이 문제를 최대의 쟁점 가운데 하나로 다루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채 상병 사건을 둘러싼 향후 정국을 대예측 해본다.
‘못할 일이 없는 민주당’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은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 행정부가 불법침입과 도청을 하고, 이를 부정하고 은폐하려는 상황에서 결국 대통령이 낙마했던 사건이다. 이를 통해서 닉슨 대통령은 미국 정치 역사상 최 초이자 유일하게 임기 중에 사퇴한 대통령이 됐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국의 대통령에게 이 사건을 언급한다면 이는 곧 ‘당신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메시지일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이와 비슷한 사건이라면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을 둘러싼 의혹이다. 여기에는 대통령이 직접 개입되었다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서 정권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도 특검법 찬성 여론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거부의 입장을 취해왔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 채상병 특검법은 수많은 정치 이슈 중의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실 스스로가 이 문제를 키우면서 해결을 미뤘고, 따라서 이제는 정국의 명운을 걸 수도 있는 사안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지난 5월 30일 온라인 뉴스레터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채 상병 특검법을 거부하는 이유가 이거였나. 윤 대통령의 개입을 감추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워터게이트처럼 은폐 노력 자체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뜩이나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야권이 ‘탄핵’을 노래한다. 분명하고 명쾌한 진실 고백이 필요하다.’
보수 신문으로 평해지는 <중앙일보>도 논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밀어붙인 ‘채 상병 특검법’에 거 부권을 행사했지만, 민주당은 이 특검법을 다시 상정하겠다고 한다. 민주당 등 야권이 22대 국회의 거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으니 못할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당시 어떤 생각이었고 무슨 조치를 했는지를 국민에게 밝히면 이에 동의할 국민도 많을 것이다. 지금 이 그때라고 본다. 시기를 놓치면 각종 억측이 꼬리를 물 것이다.’ 문제는 이 채상병 사건이 ‘군대’와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군대는 전통적으로 보수세력이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중요 기관이 아닐 수 없다.
안보를 든든하게 해야만 ‘진정한 보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또한 군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아야만 정권이 안정된다. 하지만 이 채상병 사건은 단순히 해병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육군, 공군, 해군 모두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상당수 군인들은 이번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볼 수밖에 없고, 또한 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민들의 입장에서도 결국 ‘내 아들 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대통령의 개입 때문에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난도의 정치적 해법이나, 여당과 야당과의 정치적 불이익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단순하고 명쾌하며 직관적인 문제이다. 또 자식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개입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들 상당수는 매우 예민하게 이 문제에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점들이 결국에는 이 채상병 사건이 ‘정권의 명운’을 좌우하는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 공수처
문제는 민주당을 비롯한 나머지 야당들도 채상병 특검에 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법사위에서는 단독 심사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 또다시 속전속결로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앞으로 계속 될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거부권 행사이다.
이런 모습이 지속적으로 국민에게 보인다면 결국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야권에게 탄핵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현재 거대 야당이 아무리 독주한다고 하더라도 역풍이 불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국회를 되돌아보면, 한쪽이 의석이 많더라도 독주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국민들은 반드시 지지율로 경고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경고가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곧 국민들이 야권으로 하여금 계속 해서 대통령과 여권을 압박하라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가 있다. 심지어 민주당은 유전개발과 양평고속도로와 관련해서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대통령실과 여권은 특검과 국정조사로 이해 ‘정신을 못 차리는 상황’ 에 직면할 수가 있게 되고, 여기에서 지지율이 더 떨어지게 되면 본격적인 탄핵론이 가동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특검 이전에 채상병과 관련한 수사를 하고 있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의 명운도 걸려있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제까지 공수처는 그 수사 실력 면에서 존재감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지난 5월 말 오동훈 공수처장이 취임하면서 ‘2기 공수처’가 출범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 하에서 임명이 된 것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한 수사를 하지 않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왜곡된 수사를 할 경우에는 야당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으면서 그 존재감은 더욱 약화 될 수도 있다. 여기에다 국민들의 공수처를 보는 시각도 나빠져서 결국 공수처에 대한 신뢰감은 더욱 작아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공수처 역시 채상병 사건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공수처가 하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만약 부실한 수사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 준다면, 야당은 채상병 특검을 더욱 앞당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수처는 수사를 약하게 할 수도 없으며, 반대로 과도하게 강하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시간이 점점 흐른다는 점이다. 이 말은 대 통령의 임기가 이제 후반으로 질주하게 되고, 그럴수록 윤 대통령을 지키려는 사람은 하나 둘씩 떠나갈 수밖에 없다. 공수처도 그럴 수 있고, 국민의힘 국회의원들도 그럴 수 있다.
또한 최후의 보루인 친윤 세력들도 이제 서서히 윤 대통령의 레임덕과 함께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그러면 결국 퇴임 후에도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될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사법적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국민의힘은 또다시 실패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되어버린다. 한 국가의 보수세력이라고 불리는 일정한 집단이 궤멸적 타결을 입게 된다면, 이는 나라 전체의 입장에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