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공무술 종주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립니다”
“특공무술 종주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립니다”
  • 정하연
  • 승인 2019.11.2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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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째 방한단 이끈 세계특공무술연맹 이원익 총재
사진촬영: 이 신 기자
지난 10월 21일 인천공항으로 전 세계 20여 국에서 선발된 25명의 특별한 사람들이 입국했다. 미국의 전(前)재무장관 빈센트 코발리스, 영화 ‘씬시티’, ‘300’ 제작에 참여한 알리 브라운, 프로듀서, 배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배경이 전부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특공무술’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특공무술연맹(총재 이원익)의 대표단으로 한국을 방문, 일주일의 일정으로 한국의 많은 부분을 체험하기 위해서 들어왔다. 또 미국 방송사의 촬영팀이 함께 들어와 향후 다큐멘터리로 제작, 전 세계의 전파를 탈 예정이다. 이는 모두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이원익 총재의 의지가 반영된 행사다. 이 총재는 지난 1982년에 미국에서 특공무술을 전파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 550개의 도장이 운영 중이다. 유단자만 15만 명, 수련자는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원익 총재는 최근 3년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 본지의 취재팀은 이원익 총재를 만나 특공무술의 글로벌 현황과 앞으로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특공무술연맹 이원익 총재가 인터뷰에 앞서 잡지에 기재될 사진촬영을 위해 책상에 앉아 자세를 잡고 있다. (사진=이 신 기자)
세계특공무술연맹 이원익 총재가 인터뷰에 앞서 잡지에 기재될 사진촬영을 위해 책상에 앉아 자세를 잡고 있다. (사진=이 신 기자)
 
독특한 철학으로 탄생한 특공무술
세계특공무술연맹 대표단의 방한은 이번으로 총 9번째이다. 특공무술이 처음 시작된 곳을 방문하는 것은 무술인들에게 매우 뜻있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폭넓은 교류가 가능해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다. 실제 방한단은 한국을 ‘그랜드마스터(Grandmaster)의 나라’라고 생각하며 가보고 싶은 나라로 손꼽는다.
이제 세계인에게 특공무술은 단순한 신체단련의 의미를 넘어 정신적인 신념으로 굳어지는 추세다. 이원익 총재가 미국으로 가서 처음으로 지도를 한 것은 텍사스 주립대학 학생 68명이었다. 그런데 37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특공무술을 하는 사람이 무려 65명이다. 그들 중에는 미국 재무부 장관도 있으며 목사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미국 각지에서 대부분 특공무술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다. 한국의 특공무술을 널리 전파해야 하는 사명 때문이다. 특공무술이 무술의 역할을 넘어 한국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원익 총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희는 특공무술의 종주국인 한국에 대한 존경심을 매우 엄격하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유단자가 되기 위해서는 애국가 1절을 부를 수 있어야 하며, 한글을 알아야 합니다. 또 집에는 모두 태극기가 걸려 있어야 합니다. 경기 용어도 물론 한국어를 사용하고, 연장자라면 분명한 한국어로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후배’라는 용어도 사용합니다. 종주국에 대한 존경이 없이는 무예도 완성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는 이원익 총재의 모습 (사진=세계특공무술연맹 제공)
특공무술을 선보이고 있는 이원익 총재의 모습 (사진=세계특공무술연맹 제공)

사람들은 특공무술을 두고 ‘여러 무술을 짜깁기한 무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절대 아니다. 특공무술이 탄생한 것은 이원익 총재가 군 복무 시절 장기오 5공수 여단장의 지시하에 실전을 목적으로 개발, 보급된 무술이다. 이 총재는 5살 때부터 무술을 시작했으니 군 복무 시절에는 이미 20년 이상 무예를 갈고 닦아 깊은 내공을 가진 상태였다. 더욱이 이 총재는 무술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무예 철학을 활용해 특공무술을 완성했다.
“저는 5살 때부터 목검을 가지고 산에서 뛰며 무예를 익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주먹이 점점 단단해질 때는 집에 가기 전에 강가에 들러 돌을 10개~20개씩 격파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그때부터 ‘나만의 무술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합기도, 유도, 태권도가 있었지만, 왠지 틀에 얽매이는 것이 싫었습니다. 이렇게 품었던 소망이 군 복무 시절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美 시민권 포기한 후 입대
이원익 총재의 군 복무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다. 사실 그는 공군 출신인 아버지를 따라 12살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학창시절을 거치고 대학 4학년 당시. 마지막 기말고사를 앞둔 시기였다. 이 시험만 거치면 지난 4년간의 노력에 대한 결실을 볼 수 있었기에 친구들 모두 밤을 새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 그런데 갑자기 한 외국인 친구가 짐을 싸더니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모두 의아해할 때 그 친구의 대답은 “지금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서 나라를 지키러 가야 한다”라고 했다. 그 친구는 이스라엘 국적이었다. 일종의 문화충격에 빠진 이원익 총재는 그간 많이 그리워했던 조국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났다. 대학 졸업 후 입대를 원했지만 이미 미국 시민권자인 그가 한국에서 입대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입대를 자원했다. 그런데 그는 당시 곧장 국방부로 끌려가 조사부터 받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전산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그의 과거 기록이 없었다. 갑자기 외국에서 시민권을 포기하고 군대에 입대하겠다고 하니 간첩으로 의심받을 만도 했다. 실제 시민권까지 포기하면서 군에 입대한 사례가 그때까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국방부의 의심도 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군에 입대해 완성된 특공무술은 여러 방면에서 기존 무술과는 차원이 다른 독특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공격과 방어’에 대한 남다른 개념이다. 
“세계의 모든 무술에는 전부 공격과 방어의 개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공무술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저는 보통 대련을 하게 되면 3~5초를 넘기지 않고 이깁니다. 그 이유는 상대가 공격하면 저는 손으로 방어를 하지만, 그 방어 자체가 공격이 되어 상대방을 쓰러뜨립니다. 그러니 상대방은 공격하는 순간 지게 됩니다. 저는 방어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공격입니다. 즉, 방어와 공격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머릿속의 개념에 불과합니다.”
 
36본관극기훈련후의 기념촬영 (사진=세계특공무술연맹 제공)
36본관극기훈련후의 기념촬영 (사진=세계특공무술연맹 제공)

이렇게 특공무술은 강력한 기술과 힘에 의지한 실전 전투를 위한 기술로 점차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이원익 총재는 특공무술이 단지 기술로 머물지 않고 인격의 수양으로 이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인을 길러내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품격있는 인간을 양성하고 싶었다. 특공무술 도장에 다니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처음 3일은 내내 청소만 시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된 사람,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제2의 천성을 기르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만이 특공무술을 배우 자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태권도도 매우 훌륭한 무술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스포츠화가 되면서 과거 무술의 전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얼굴을 때리는 것은 규정상 금지되어 있고, 빨리 점수를 따야 합니다. 그러니까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점수를 빨리 따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립니다. 가볍게 빨리 차는 것이 버릇이 되면서 진정한 무예의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또 사부였던 사람이 ‘코치’가 되고 제자였던 사람이 ‘선수’가 되면서 과거에 있던 사부에 대한 존경심도 사라졌습니다. 특공무술은 이런 스포츠화를 원하지 않으며 무예의 전통적인 힘과 기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2020년, 연맹 본부 한국 입성
결국, 태권도와는 또 다른 정신세계를 가진 특공무술은 전 세계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고 오늘날 세계특공무술연맹이라는 큰 단체로 자라날 수 있었다. 
현재 이원익 총재는 특공무술 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굶주리는 전 세계인들을 위한 씨감자 종자 개발 사업도 하고 있고, 영화를 통해 특공무술을 더욱 알리기 위한 영화제작, 투자사도 한다. 이외 원유사업, IT 사업도 한다. 그는 “대부분 경영자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믿지만, 나는 우리 임원들의 지식과 경험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일 잘하는 사람을 스카우트해서 적절한 자리에 앉혀 놓고 지원을 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특공무술연맹 임원들과 함께 단체촬영에 임하고 있는 이원익 총재 (사진=이 신 기자)
세계특공무술연맹 임원들과 함께 단체촬영에 임하고 있는 이원익 총재 (사진=이 신 기자)

이제 2020년에 세계특공무술연맹은 본부를 한국으로 옮길 예정이다.
“아무래도 종주국에 연맹의 본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내년이면 이제 연맹 본부가 꽤 큰 규모로 한국에 들어옵니다. 전체 규모는 우리나라 국기원이나 중국의 소림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원래 미국에서부터 전파했던 엄격한 인성교육과 무술로서의 힘을 잃어버리지 않고 철저하게 교육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제 특공무술의 위상이 전 세계에서 더욱 높아질 것이고, 무술로 인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도 훨씬 많아지리라 봅니다.”
37년 전. 특공무술에 대한 이름조차 없었던 미국에서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무술 지도를 시작한 이원익 총재. 이제 연맹 본부가 한국으로 들어서면서 연맹이 또 어떤 거대한 발전을 해나갈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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