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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어떻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나?
기독교는 어떻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나?
  • 정하연
  • 승인 2020.10.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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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니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성경 마태복음 3장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는 산상수훈 중 이 말을 하면서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코로나19 전파자’이자 ‘극우 보수’의 진원지가 되어버렸다. ‘기독’이 아닌 ‘개독’이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도 한 두해가 아니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었지만, 그 뇌관은 ‘전광훈과 8·15 집회’에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기독교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제 기독교를 맹비난하고 있다. 그들이 성경의 교리와 기독교의 논리에 대해서 잘 알아서가 아니다. 국민에게 끼친 폐가 너무도 컸기 떄문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가 바뀔 때마다 약자를 배려하고 민주주의를 이끌어 왔던 기독교는 왜 이렇게 변질되고 말았을까?

 

하나님이 까불 수 없는 목사
“2020년 8월, 기독교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교계에서 심신치 않게 흘러나오는 말이다. 전광훈 목사와 일부 극우보수 기독교인들이 8·15 집회에 참가하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확신시키고, 극우적 주장들이 집회에서 난무하면서 생긴 일이다. 어떤 이들은 ‘신천지보다 더 심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 기독교의 문제는 꽤 오래된 문제이다. 교회의 사유화를 통한 세습, 목사들의 성추행 등은 마치 단골메뉴처럼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것도 자그마한 개척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대형 교회에서 이런 문제들이 터졌다.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다각도로 조명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개신교의 ‘태생’이다. 우리나라 개신교는 미국 보수 개신교 교단과 쌍둥이를 이루고 있다. 종교의 형태가 ‘기복’이라는 이야기다. 기도를 통해 복을 받으려고 하고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으려고 한다. 물론 모든 종교에서 기복의 형태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종교의 본질적인 목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에 대한 복과 함께 이웃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르친다. 하지만 미국 보수 개신교는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자신의 안위와 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종교 논리가 그대로 우리나라 개신교로 흘러 들어왔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목회자가 ‘하나님화(化)’ 된다는 점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일 뿐,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종교의 분위기 상 목회자들은 목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목사님이 복을 빌어주지 않으면, 자신도 복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사의 하나님화’의 결정판은 바로 전광훈 목사의 과거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신도에게 속옷을 벗으라고 했을 때 벗는 사람이 나의 신도다”,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라는 말들은 흡사 종교 지도자의 발언이 아니라 정신이상자의 발언으로 봐도 무리하지가 않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아멘”이라고 답했다. 목사는 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존재다. 많은 보수적 신도들이 정부의 설명을 ‘가짜뉴스’로 단정짓고 목사의 말을 따르기 떄문이다. 신을 섬기는 종교가 아니라 목사를 섬기는 종교. 어쩌면 기독교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예정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색채가 가미되면서 상황은 점입가경이 되어버린다. 물론 종교인도 때로는 진보적일 수도 있고, 보수적일 수도 있다. 종교인 자체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색채가 종교에 ‘개입’될 때이다. 개신교가 정치적으로 대승을 거둔 기억이 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이다. 당시 기독교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결국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의 기억은 정치에 대한 자신감으로 상승됐다. 그리고 개신교 목사들이 거침없이 정치적 발언을 쏟아낼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사회적인 문제에 ‘정치+종교’의 논리로 필터링을 해 내고 거기에 보수적인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한다. 명성교회 전 김삼환 목사는 세월호 사건을 두고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이 공연히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이 아니다. 이 나라 국민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하나님에게 청소년 300여 명의 목숨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냥 죽여도 되는 파리 목숨에 불과하다. 일반인들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분노를 하게 된다. 종교가 이웃사랑이 아닌,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위한 명분으로 활용될 때 종교는 종교로서의 생명을 다하게 된다. ‘사이비 종교’란 종교 본연의 목적을 잃은, 그래서 돈이나 재물이 종교의 목적이 될 때 생겨난다. 정치적 주장을 하는 극우 보수 종교인들은 종교의 본질적인 목표를 잃었기에 생명을 다하게 된 것이다. 전광훈 목사는 지난 20년간 ‘애국운동’이라고 하는 정치집회를 무려 2,300번이나 개최했다. 그들의 목표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였을 뿐이다.
물론 ‘모든’ 개신교가 이럴 리는 없다. ‘대다수의’ 건전한 교회는 이런 정치적 색체에서 벗어나 있고, 과격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리고 실제로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고, 기복보다는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는 더욱 많다. 그러나 대중은 그런 세세한 차이까지 따질 여유가 없다. 언론에 등장하는 폭발적인 이슈를 따라가면서 판단할 뿐, 그들 내부의 논리를 자세하게 알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한국 개신교는 전통적으로 전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전도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이거니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늘리는 일이기 떄문이다. 또 현실적인 교회의 재정면에서도 전도는 필수적이 아닐 수 없다. 신도가 많아야 헌금액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교회의 전도 활동에 핵폭탄급 장애물이 생기고 말았다. 아무리 기독교의 좋은 점을 설명하려고 해도 비신도들은 “사회에 민폐나 되지 말라”는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전도가 먹히지 않는 세상이 와버린 것이다.
지난 9월 20일, 한국교회총연합 비롯한 기독교계는 정부에게 ‘비대면 예배 해제조치’를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끝내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온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 그들은 여전히 대면 예배를 하겠다며 이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영국에 복음주의를 전파한 존 웨슬리는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강조했다. 그는 참 신앙인과 그렇지 않은 신앙인을 구분하는 것의 척도로 ‘가난한 자를 위해 지갑을 여는자’를 제시했다. 진심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나타나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한국 기독교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할 때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게 한들, 언제 기독교에 대한 신망이 다시 회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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