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3:53 (목)
가장 값비싸고 가장 값싼 한 쌍⋯ 바이올린과 도마로 연주한 앙상블
가장 값비싸고 가장 값싼 한 쌍⋯ 바이올린과 도마로 연주한 앙상블
  • 여지훈
  • 승인 2021.07.0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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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 바이올린도마 명장

바이올린과 도마라고?’

이인수 명장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저 세간의 관심을 끌고자 어울리지도 않는 조합을 억지로 꿰어맞춘 예술가 지망생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나마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힘써온 윤재환 비채나 회장의 적극적인 소개가 있었기에 그럼 예의상 얼굴이나 한번 비추자.’라는 심정으로 나선 걸음이었다.

그리고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양평군립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그런 오만한 생각은 바람에 날린 듯 사라졌다. 결에 따라 미묘하게 색을 달리하는 적갈빛 바이올린 문양은, 과연 그것을 도마라 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박상근 대한전통명장협회 이사장의 축사와 윤재환 회장의 환영사를 한 귀로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작품을 구경하던 중, 이날 식의 진행을 맡은 김태균 사회자에 대한 소개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러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회의 청년분과위원장이라는 길디긴 직함보다는,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나이지리아 이도오순킹덤 추장이라는 소개가 더 흥미로웠다. 듣기로는 유럽에서의 기사 작위에 버금가는 위치라는데, ‘참 특이한 사람들끼리 만났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후 다시 하염없이 작품 관람에 매진하다가 마침내 식이 끝났다는 소리에 얼른 이날의 주인공, 이인수 명장(대한전통명장협회 182호 전통바이올린도마명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맑고 선한 웃음이 인상적인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받아 주었다.

이인수 바이올린도마 명장(사진=이인수 명장 제공)

엄마, 나는 왜 도마로 태어났어요?!

엄마, 나는 왜 도마로 태어났어요? 나도 엄마가 기쁠 때, 슬플 때, 음식을 할 때 듣는 음악처럼 바이올린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나도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도마는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는 나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습니다.

도마야, 엄마는 늘 너와 맛있는 요리를 할 때, '탁탁탁,' '삭삭삭' 소리를 내고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로 연주하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단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도마가 없으면 엄마는 맛있는 요리를 할 수가 없어. 엄마와 요리도 하고, 연주도 하고, 우리가 함께 만든 음식으로 우리 가족도 건강하게 살아가잖아. 그리고 도마 위에 요리를 올려놓으면 얼마나 멋있고 먹음직스러운지 그야말로 예술이지! 그러니 도마야. 엄마도, 우리도 모두 너를 사랑해. 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란다.”

이렇게 도마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란 것을 알았고, 엄마와 노래하며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리고 그의 개인전 소갯글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나름의 심오한 철학이 밴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전 원래 바이올린 제작자였어요. 양산품이 아닌 손으로 직접 바이올린을 제작하고 판매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예술적 가치가 참 큰 데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연주하고, 널리 이야기하고, 또 감동까지 받는데 왜 우린 바이올린과 관련된 문화가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안타깝더라고요. 그렇다고 바이올린이 누구나 연주하고 즐기는 악기는 아니어서 좀 더 쉽게 떠올리고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 봤죠. 그러다 문득 도마를 떠올리게 됐어요.”

이인수 명장은 나무로 만든 사물 중 가장 고가인 바이올린, 가장 저가인 도마가 참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이올린 도마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어 바이올린이라는 예술적 가치를 도마와 결합해 도마의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켜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바이올린도마명장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2014년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8년의 세월이 지났다.

 

도마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100, 200년이 지나도 가치가 살 수 있게, 작품으로 남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은 뒤에 '내가 작품에다 음식을 먹었어?'라고 놀랄 걸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지더라고요. 물론 도마를 계속 쓰다 보면 스크래치가 나겠지만, 오히려 바로 그때부터 도마의 예술적 가치가 드러난다고 봐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비로소 예술이 탄생하듯, 도마 역시 스크래치가 날 때야말로 진정한 가치가 탄생하는 거죠. 그렇게 스크래치가 나고, 깨졌다가 수리되고, 또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고. 그러다 보면 도마에 그것을 사용하던 이가 가족을 위해 요리할 때의 마음이 스며들고, 그렇게 인생이 배이고, 그걸 자식에게, 또 손주에게 물려준다면 한 사람뿐 아니라 대를 이어 또 다른 삶들의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사진=종합시사매거진)

중요한 건 새로운 양식이 아닌, 놓치고 있는 소중한 일상의 재조명

그의 이번 개인전은 서울 키비씨와, 서초동에 있는 본인의 갤러리에서 열었던 두 번의 전시회에 이어 세 번째 전시회였다. ‘세계 최초 바이올린도마명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철학관도 말해 주었다.

“'문화는 누리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하는 문화라도 내가 누리지 못하면 소용없고,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다고 봐요. 따라서 문화예술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더 오래 누릴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감동을 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감동을 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했지만 놓쳐온 많은 것들을 재조명하면서 자연스러운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그런 스토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그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물었다. 그는 포부라고 부를 만한 거창한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만 자신이 가진 소소한 이야기와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그래서 사람들이 잔잔하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예술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꺼내 보였다.

그의 꿈은 함부로 사용되다 쉽게 버려지곤 했던 도마의 가치를 일깨웠던 그의 예술처럼 수수하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가장 작은 것의 소중함을 다른 무엇보다 잘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거창하고 휘황한 것만이 온통 조명받는 오늘날, 조용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빚는 예술가가 있다는 사실은, 때론 도마 소리가 그 어떤 바이올린 연주보다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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