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전쟁, 왜 하필 4차 산업인가?
미·중 전쟁, 왜 하필 4차 산업인가?
  • 정하연
  • 승인 2021.08.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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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AI, 로보틱스, 전기차, 유전공학’⋯ 단순 기술의 문제 No! 국가존망의 문제 Yes!

 

198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솔로는 그보다 이전에 쓴 논문에서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요소는 기술의 변화(Technological Change)’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주장은 세계 최강 자리를 놓고 다투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유효하다.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 이사장 에릭 슈미트(사진=씨넷)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 이사장 에릭 슈미트(사진=구글코리아)

AI 혁신을 위한 전략이 필요한 미국

미국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mmission on Artificial Intelligence, NSCAI)가 지난 31일 의회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Final Report)에 따르면 미국이 경쟁국, 특히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AI 시스템 구축 및 혁신에 기존보다 훨씬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AI 기술을 이용한 적의 사이버 공격, 디지털 허위 정보, 드론 떼, 미사일 공격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의 미래도 수호할 수 없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이를 위해 백악관의 리더십과 초당적 의회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AI에 대해 단순히 기술 개발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령 적들에 맞서기 위해 인간-기계팀으로 구성된 전담반을 꾸려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것이다. 아울러 고급 인재 육성을 위한 직업 재교육,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 AI 연구 인프라와 테스트베드 구축, 고도로 숙련된 이민자 수용, AI 시대에 필요한 포괄적인 지적 재산 정책 확립, AI 혁신을 위한 동맹국과의 협력 전략 등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NSCAI는 미국의 적들이 딥페이크(AI 기술을 이용해 기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 편집물)’를 악용하거나 미국인 개개인을 조종하기 위해 미국인에 대한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미국 정부가 임무 전반에 AI 도입을 가속화하지 않으면 향후 10년 이내로 군사적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래 기술에 의존하는 중국

그렇다면 중국의 사정은 어떨까? 현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이자, 중국 공산당 및 정치환경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주드 블랑셰트가 지난 6월 국제 정치경제평론지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2013년 중국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은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강박적이고 조급하게 행동하고 있다.

블랑셰트는 시진핑이 5G, AI, 로보틱스, 유전 공학 기술 등을 장악하는 것이 향후 중국의 경제군사지정학적 운명을 결정지으리라는 믿음 아래 공산당의 총력을 동원해 중국을 첨단 기술 국가로 변모시키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이러한 미래 기술이 오래전부터 곪아온 중국의 문제들, 즉 빠르게 노령화되는 인구, 연금 시스템의 과부하, 매년 10%씩 높아지는 임금 수준, 빠르게 늘어가는 저숙련 노동자 실업률, 한 자릿수 중반대까지 떨어진 경제성장률, 천문학적 규모의 기업 부채, 이미 포화 상태인 인프라 수준, 나날이 심화되는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AI에 기반한 공격적인 자동화를 추진함으로써 노령화에 대응하고, 신산업 육성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며, 친환경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경제성장률 둔화와 환경 오염 문제 모두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내부적으로 안정을 꾀하고, 외부적으로도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서 앞서나갈 궁리를 하는 것이다. 또한 미래 기술은 중국 정부가 자국민과 소수민족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압박할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편,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의 오종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중 기술 패권 경쟁의 최신 동향이란 보고서에서 중국은 산업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국가적인 지원과 더불어 5G, AI를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며 미국을 빠르게 추격했다.”면서, “현재 미국과 중국은 5G(6G), AI, 전기차,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우주 등 첨단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하고 있다. 대부분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핵심 분야이며, 기술 표준을 선점한다면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 연구원은 5G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이 상당한 우위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5G 관련 중국 대표기업으로는 화웨이, ZTE, OPPO, Datang Mobile이 있으며, 이들 기업이 보유한 5G 관련 특허는 전 세계의 38.4%에 달한다. 미국은 퀄컴, 애플, 인텔이 대표적이며 전 세계 5G 관련 특허의 약 19.9%를 보유하고 있다. 6G2030년에나 상용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5G에 비해 여러 산업과의 시너지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이미 양국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양국이 5G와 더불어 가장 적극적으로 경쟁하는 분야가 AI. 최근 AI가 모든 산업에서 활용되면서 양국의 경쟁은 특정 영역보다는 플랫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요 AI/플랫폼 기업으로는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이 있으며, 중국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가 있다.

AI 경쟁력을 비교해보면 미국이 질적으로 크게 앞서고 있다. 미국은 AI 스타트업과 연구자 수, 원천기술 확보에 있어서 중국을 크게 웃돈다. 그러나 최상위 레벨의 연구자 수와 피인용 상위 1% 특허는 중국이 40배가량 많아 양적으로 크게 앞선다. 또 중국은 모바일 결제 이용자 수가 미국의 9배를 넘고, 각종 기기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도 미국의 2.2배에 달해 데이터 생산 능력에서 우위를 보인다. 대량의 데이터 확보 및 처리를 통해 정밀도를 높이는 머신러닝 방식의 AI 응용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강점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불어 중국의 슈퍼컴퓨터 보유량은 214대로, 113대를 보유한 미국에 비해 월등히 많다.

지금껏 미국은 최소한 겉으로 만큼은 홍콩이나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탄압,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억지스러운 행패, 대북 제재 위반 등을 근거로 주로 정치경제외교적 측면에서 중국을 압박해 왔다. 이제는 거기에 기술전략적 압박 카드가 명시적으로 추가됐다.

4차 산업이란 미개척지를 앞두고 미·중 간 전쟁은 이미 한창이다. 그러나 4차 산업에 대한 양국의 전념이 오직 상대를 압도하기 위한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건 상황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중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스의 자리를 위협하는 신흥 강자와 그를 견제하는 기존 보스라는 일차원적 맥락보다는, 양국이 내외적으로 직면한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수뇌부는 이미 정치경제외교기술안보 등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양국의 전투가 산업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만 하는 우리나라 정책 입안자들도 더욱 폭넓고 심층적인 맥락에서 현 상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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