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0 15:24 (토)
관계성이 사라진다
관계성이 사라진다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23.07.2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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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 친구와 단둘이서 일본 오사카 엑스포 박람회 여행을 떠났다. 취업 후 신입생으로서 배낭을 메고 오사카 외 일대를 꼭 해 보고 싶었다. 먼저 당시에는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 했을 뿐 아니라 요즘처럼 휴대전화도 없었고, 현지의 통신 수단도 여의치 않아 원래는 3일 동안만 여행을 마치고 박람회를 참가 계획으로 어쩔 수 없이 우리 둘은 배낭 하나씩을 둘러메고서 3일 동안 일본 오사카시 전역을 돌아다녔다. 


일어도 능숙하지 않은 데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에 구글 지도와 같은 어플도 없어서 조그마한 관광 평면지도 한 장을 손에 들고 다녔다. 유명 관광지나 지인의 숙소를 찾아가려고 해도 현지인에게 수십 번은 길을 물어야 했다. 어떤 경우에는 정반대 방향으로 안내를 받아 길을 잃거나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몇 걸음 가서 말을 걸어 길을 묻고 또 몇 걸음 더 가서 길을 물어 목적지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있었다. 16여 년 전에는 나와 아내 그리고 딸을 데리고 서유럽을 나섰다. 
당시 한국에서 10만여 원을 주고 겨우 손바닥 크기만 한 <톰톰 내비>라는 흑백 내비게이션을 대여해서 이것을 들고 갔다. 10여 일 동안 서유럽을 두루 다니면서 요즘 말로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내비게이션이었지만 가고 싶었던 유명 관광지를 찾아가는데 단 한 사람에게도 길을 묻지 않았다.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된 관광지를 입력하면, 목적지까지 척척 길을 안내해 주었다.
편리함은 있었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일본에서 해외 처음 여행을 하며 만들었던 추억거리와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불과 10년 전에는 아내와 함께 미국 ‘샌드에고’에서 연구하고 있는 딸 집을 방문했다. 캘리포니아를 관광할 때도 집을 나서기 전에 스마트폰 앱으로 관광 일정을 짜고, 하루 동안 다닐 경로를 모두 작성한 다음, 시내를 둘러보니 어느 누구에게도 말 걸 일이 없이 내 볼일만 보고 숙소로 돌아온 적이 있다. 
여행자로서 하루를 지내보니 막상 현지인에게 말 걸 일이 없었고, 당연히 어느 누구도 나와 아내에게 말 걸어오는 이도 없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지 길을 묻느라 말 걸 일 없는 세상일 뿐 아니라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주인에게 혹은 점원에게 말 걸 일이 없다.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할게요" 하고 손을 들어도 “식탁에 앉아서 주문하시고 앉아서 기기에 카드 넣고 결재하세요.” 그게 다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도 카운터에 "아이스크림 주세요." 해도 마찬가지의 대답이 돌아온다. 요즘 식료품점은 각종 시리얼과 음료, 각종 채소와 냉동식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 식료품점과 다를 바가 없는데 자세히 둘러보면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도 없고, 계산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스캔하는 법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하면, 다른 식료품점보다 많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게에 들어선 손님은 진열대에 놓인 물건을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아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매장에서 물건값을 계산하지 않고 나가도 이를 말리는 안전요원도 없다. 다만 나중에 대금이 자동으로 청구될 뿐이다. 
이곳 시골 작은 마을의 마트에서 손님과 점원이 서로 말을 건네며 안부를 묻거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풍경이 사라져 버리는 일이 이제 불 보듯 뻔한 일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가 사라져 가고 있다. 2022년 12월에 출시된 <챗GPT>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정감 어린 대화의 기회마저 서서히 빼앗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딸이 엄마에게 엄마가 해 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각종 음식의 조리법을 묻고 했다. 그러면 엄마는 딸에게 엄마만의 특별한 요리비법을 전수해 주며 행복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챗GPT>에 “찌개 끓이는 법을 알려 줘!”라고 입력하면 각종 음식 재료를 소개해 줄 뿐 아니라 재료를 다듬는 법 그리고 요리하는 법까지 요리와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토대로 질문자에게 알려 준다. "지금 냉장고에 두부, 계란, 대파 그리고 버섯이 있는데 오늘 저녁 요리로 뭘 만들면 좋을까?"라고 입력하면 매우 상세하게 다양한 요리의 레시피를 제시해 준다. 
이 밖에도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해 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하는 일도 점차 필요 없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점점 각자의 삶에 고립되는 현상이 늘어가고 있다. 이전에는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 멘토나 상담가에게 고충을 털어놓으며 대화하는 중에 해결책을 찾고 때로는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챗GPT>에 고민을 의뢰하면 매우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답변을 주어 이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말 걸 일도 없고, 말을 걸어오는 이도 없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이 점차 심화 되어 가고 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차갑게 식어 가는 것도 인류 종말의 징조 가운데 하나인가? 뇌리에 스쳐 가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따스한 정, 친절, 배려와 존중 그리고 사랑과 이해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과거와 달리 초연결 시대를 살고 있다지만 오히려 외로움과 고립이 나날이 심화 되어 가는 오늘날의 세태는 이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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