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0 15:24 (토)
“대한민국 60년 화훼농업의 리더, ‘꽃은 인간이다’라는 신념으로 화훼 산업 발전에 노력하겠습니다”
“대한민국 60년 화훼농업의 리더, ‘꽃은 인간이다’라는 신념으로 화훼 산업 발전에 노력하겠습니다”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24.01.1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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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동성농원 이동범 명인

현대 사회에서 꽃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며, 누군가를 축하할 때 주는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면서, 우울할 때 바라보면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소중한 생명이 영원의 나라로 떠날 때도 꽃은 항상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꽃이란 문명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한 개인의 인생에서도 소중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화훼 산업의 역사는 60여 년이다. 처음에는 허례허식과 낭비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화려한 꽃을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가 되기까지 무려 60여 년을 화훼 산업에 종사하면서 업계를 선도적으로 이끌어 온 인물이 있다. 바로 ‘2023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된 동성농원 이동범 명인이다. 그는 ‘꽃은 인간이다’라는 철학 아래 끊임없이 화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으며, 국가 행사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한국 화훼 산업을 일으켜 낸 최초의 인물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5살, 고려대 온실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기 시작

농촌진흥청은 매년 최고 수준의 농업기술을 보유하고, 지역농업·농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큰 인물을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한다. 지난 2023년에는 동성농원 이동범 명인이 선정되었다. 그는 1969년부터 동성농원을 설립해 지금껏 운영하고 있으며, ‘생산지 유통 1호점’이라는 역사를 기록했다. 1997년부터는 화훼중도매인 자격을 취득한 후 26년간 화훼중도매인으로 활동해 왔다. 2016년에 ‘한국화훼유통연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이제까지 그가 해온 수많은 성과를 되돌아본다면, 그가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까지 하다. 우선 수상소감부터 들어보았다.

“제가 화훼에 입문한 지는 근 60여 년이 됩니다. 흙과 식물과 함께 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제가 살아온 여정, 경륜, 기술력, 노하우를 국가가 높이 평가하여 발굴해 준 것 같아 매우 영광이며 자랑스럽습니다. 특별히 이제까지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랜 세월 화훼 산업에 종사하면서 ‘꽃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철학을 터득했으며, 아울러 ‘꽃은 인간이다’라는 신념으로 이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은 제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것 이상으로 보답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화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아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잊지 않고 지켜봐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동범 명인이 처음으로 꽃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려대 온실 연구보조원으로 4년간 일했던 때이다. 그는 기초적인 기술부터 심화 과정까지 학부와 대학원생들의 실험 실습을 보조하고 사후 관리까지 하는 일을 했다. 처음 최첨단 유리 온실과 수백 종에 달하는 다양한 꽃의 종류에 매우 놀라고 감탄했다. 그 일을 무려 4년간이나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웬만한 대학생들보다 좋은 실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시골 출신이다 보니 식물을 다루는 흡수력이 탁월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커다란 욕구를 느끼기고 적성도 맞아 대학에 진학하여 원예학을 전공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때부터 화훼 관련 최신 국내외 카탈로그와 정기 간행물은 물론 전문서적을 탐독하면서 화훼에 대한 이해력은 물론 기술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었다. 심지어 표본온실 내에 있는 식물의 학명을 전부 암기해서 교수도 놀랄 정도였다.

88 서울올림픽에 이바지해 올림픽 기장 수훈

이동범 명인은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만의 농장을 개설했다. 시골의 부모님으로부터 소를 판 돈 35만 원을 지원받아 서초동 꽃마을에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 이름은 자신의 이름 가운데 ‘동(東)’자를 따고 별이 되자는 의미에서 ‘성(星)’을 따서 ‘동성농원’으로 지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회사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신품종과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면서 주변의 농가와 도매상인으로부터 단숨에 주목받는 농장주가 되었다. 동시에 그는 농고, 농업전문대 등에 현장 실습 체험 농장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학교 이후 멈춰진 정식 학교 과정도 밟기 시작했다. 주경야독하며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했고 이후 한국방송통신대학 농학과에 입학해 학사 졸업 후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원에서 원예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무엇보다 놀랐던 사람들은 그가 온실 연구보조원 시절에 봐왔던 대학원생들과 교수였다. 15살의 꼬맹이가 34살이 되어 입학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동범 명인은 “그 기쁨과 벅찬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농장을 운영하면서 시대적인 운도 따라주었다. 그때만 해도 이 명인은 꽃이 좋아서 그 일을 선택했지만, 당시 그것이 큰 산업으로 발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3년도에 고려대에 원예학과가 생긴 것을 필두로, 건국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계속해서 원예학과가 생겼으며 당시가 우리나라 화훼의 태동기였다. 이러한 발전과 함께 사업도 승승장구였다. 특히 잠수교가 개통된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농장을 하고 있을 때인 1976년에 농장 바로 옆으로 잠수교가 개통됐습니다. 당시 서초역에서 잠수교까지는 거친 오솔길 언덕이어서 자전거를 타고도 못 넘어갈 정도의 길이였습니다. 하지만 잠수교가 개통되어 지나가는 차량이 우리 농장을 볼 수 있게 됐고, 왕래하는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농장에서 꽃을 구매해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예술의 전당에 이르기까지 꽃 판매장이 형성되었으며, 서초동꽃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저는 대한민국 화훼생산지 판매장 1호 매장이 되었습니다. 그 후 개인 소비자뿐 아니라 관공서, 기업 등에 다량으로 납품하게 됐고, 그때부터 화훼 유통에 눈이 떠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15살 때부터 갈고닦았던 실력이 드디어 사업에서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재래종인 철쭉, 등꽃, 국화 등이 주로 재배되고 판매되던 품종이었지만, 이동범 명인은 포인세티아, 포트멈, 바이올렛, 시클라멘, 고무나무 등의 신품종, 신기술을 도입해 보급하기 시작했다. 또 과거에는 연탄재와 밭흙, 부엽토로 재배했다면 이 명인은 피트모스, 퍼얼라이트, 버미큘라이트 등으로 만든 인공용토로 작물의 재배력을 급격하게 높일 수 있었다. 또한 비탈면 반지붕식 온상형태를 3/4식 온실 시설로 바꿨고, 보온솜(카시미론)을 개발 보급하여 동절기 보온성의 놀라운 발전을 이끌어 나갔다. 이외에도 발근촉진제, 왜화제 처리기술을 보급하고 신품종칸나 조기 싹틔우기, 파종법, 구근 대량 증식법을 개발 보급했다. 이외에도 엽삽 인공상토를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열선 장치를 개발하면서 관련 업계의 기술 선두 주자로 뛰어올랐다. 이러한 성과와 주변의 평가로 인해 그는 국제 행사 지원에도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2세 경영, 스마트팜 통해 새로운 도약

“88년도에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후 저는 화훼인의 올림픽 참여에 관한 역할에 대해서 2년간이나 조사했습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화훼인들이 이러한 국제 경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 경기장, 공원 및 성화 봉송로 꽃길조성에 적합한 품종을 선발해 연구했으며, 그 결과 왜성칸나(American Red Cross)와 대륜메리골드(Inca Orange, Yellow)를 선발했습니다. 이후 칸나 2천만 구, 메리골드 5백만 본 이상을 대량 증식해 재배하고 납품했습니다. 이후 체육부 장관으로부터 88서울올림픽 참여에 대한 공로로 올림픽기장 수훈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 혼자 잘 먹고 잘살자는 것이 아닌, 지역 화훼농업자들의 발전도 함께 추구했다. 서초동 꽃시장 철거의 위기에서부터 양재동 꽃시장 개장까지 자문 역할을 했으며, 선진화와 현대화를 위한 큰 노력을 기울였다. 1991년도 양재동꽃시장 개장과 동시에 한국화훼유통연합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생산자-유통인-소비자가 상생하는 화훼시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히 신경 썼던 것은 난. 관엽 경매제도를 도입해 생산의 규격화, 가격의 투명화를 유도했고 그 결과 품질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꽃 소비를 생활화하는 운동도 일으켰다. 2016년부터는 한국화훼유통연합협동조합을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공동체에서의 중요한 역할과 다른 산업과의 결합에 이바지했으며 이는 협동조합의 정신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향후 사회공헌에 이바지 하겠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꽃 재배 기술의 재능기부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을 위한 무료 화훼 생활교실, 초.중.고 학생을 위한 찾아가는 꽃 체험학교도 운영하고, 또 나라꽃 무궁화 ‘국화(國花) 지정’을 위한 법제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제 이동범 명인은 새로운 화훼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7년 전부터 아들 이재하(40) 대표가 사업의 중요한 부분을 맡으면서 2세 경영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팜은 국내 화훼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그럴수록 꽃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더 빛날 것으로 봅니다. 더불어 이제까지 제가 쌓은 지식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노력을 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화훼 산업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동범 명인은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꽃들을 다루며 생활 하면서 꽃의 향들이 몸에 녹아 혈액형이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RH-F(flower)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수혈도 하고 수혈도 받을 수 있는 혈액형이 되었다고 말한다. ㅋㅋㅋㅋ...

아울러 이 명인의 조카가 최근 세계 각국 국제변호사들이 응시한 1450:1의 경쟁률을 뚫고 유엔의 법조인이 되어 겹경사가 겹쳤다고.

그의 철학인 ‘꽃은 인간이다’라는 말을 통해 사람도 자신을 아름답고 소중하며 잘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더불어 꽃의 향기가 세상을 향기롭게 하고, 인간이 가진 향기도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동범 명인과 함께 ‘꽃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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