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정치인들에게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나라가 바로 ‘베네수엘라’다. 하지만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교류도 그다지 활발하지 않고 무역 규모도 비교적 작다. 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이 직접적인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아 그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현재 베네수엘라는 독재에 가까운 정치를 보이고 있으며, 경제로는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인들이 베네수엘라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면 한국이 베네수엘라와 똑같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독재, 경제적으로는 ‘폭망’을 할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베네수엘라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잘 모르고, 정말 우리나라가 베네수엘라처럼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야권 중진의원까지 경고
우리나라와 베네수엘라가 연관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문재인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미경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베네수엘라를 본뜨고 있습니다. … 좌파 연합정부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영원히 입법부를 장악하겠다는 것이죠. 이 방법은 이미 베네수엘라가 비슷하게 했습니다. 경제 정책만 베네수엘라를 본뜨는 것이 아니라 입법부까지 본뜨는 겁니다. 그다음 판사들을 마구 수사하는 것을 베네수엘라가 했습니다.”
이후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한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베네수엘라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4월 17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녀는 ‘베네수엘라’에 대해서 무려 3번이나 언급했다.
‘미국의 평론가들도 트럼프 정부와 가까운 평론가들도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만 한국 경제가 베네수엘라로 갈 것이다. 이런 공포도 있는 것이죠.’
‘다 같이 우리가 이렇게 일으켜 세웠는데 이것이 베네수엘라로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이번 대선에서) 한국이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타는 것을 막아주셔야 합니다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6월 2일에는 당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했다. 당시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후보의 집권은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이다. … 사법 장악 시도는 국가 시스템 사유화의 마지막 퍼즐이다. 베네수엘라는 2004년 대법관을 20명에서 32명으로 증원해 친정권 인사를 임명해 사법부를 정권의 도구로 만들었다.”
결국 한국이 정치적으로는 독재와 공포 정치를 할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포퓰리즘으로 인해 망해 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사실 한때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도 가장 잘사는 부자 나라 중의 한 곳이었다. 석유 매장량이 1위였고 한국 전쟁 당시에는 물자를 지원해 줄 정도로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차베스 정권이 시작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구잡이 포퓰리즘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후 이를 기반으로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언론, 지방자치, 기업체 등 거의 모든 국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 결과 국민의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근거 없진 않지만, 가능성은 희박
최근 공포 정치는 극에 달했다. 현재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고 있는 사람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다. 지난 2024년 7월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부정 선거 논란이 있었다. 이후 그는 현재까지 말 그대로 ‘공포 정치’를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인권 단체 ‘포로 페날’은 그간 대통령이 1,300명이 넘는 인사를 체포해 구금했으며, 적어도 24명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한 유력한 야당 지도자는 “베네수엘라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끔찍하다. 무고한 사람들이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끌려가고 사라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시위 참가자와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야당 정치인들이 주요 대상이다. 특히 한밤에 집에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나오면 체포를 하기 때문에 일명 ‘노크 작전’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러한 공포 정치는 ‘매우 심각한 폭압’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은 과도할 정도로 민주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진보 대통령에 진보 정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과 입법은 진보 진영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다. 사법 역시 향후 행정과 입법 권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진보 진영에 유리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수 진영의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실제로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있다는 전망은 그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정치 의식 자체가 베네수엘라 국민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25일 베네수엘라 국회의원과 주지사를 선출하는 총선거와 지방선거를 실시했지만 유권자의 불신이 팽배하면서 투표율은 10%로 추락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12·3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자마자 많은 국민들이 국회로 달려가 맨몸으로 군인들과 장갑차를 막기도 했다. 진보 진영이든 보수 진영이든 모두 상당한 정치 의식이 있어서 정말로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독재, 공포 정치가 된다면 이를 방관할 국민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에다 베네수엘라와 한국은 경제의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경제의 90% 이상을 석유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과 기술 산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외환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등 고도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특히 조선 분야는 미국이 한국에 의지할 정도이다. 여기에다 국가 신용등급 역시 AA급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경제가 몰락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이 이러한 최악의 변화는 미국에서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야 미국도 여기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기반으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미국의 관리에서 과도하게 이탈할 경우, 미국은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빈곤율에서도 한국과 베네수엘라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한국 국민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2년 기준 14.9%이지만, 베네수엘라는 중 76.6%에 이른다. 국가의 경제는 빠르게 몰락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의 격차가 줄어드는 일은 그 자체로 쉽지가 않다.
결국 ‘한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 자체가 어느 정도는 야당 정치인들의 정치적 레토릭이자 과도한 불안감 조성이라고 볼 수 있는 면도 충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