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4 16:44 (목)
World News 전쟁 위협, 폭력, 난민 … 찬란했던 유럽의 위기
World News 전쟁 위협, 폭력, 난민 … 찬란했던 유럽의 위기
  • 정하연 기자
  • 승인 2025.12.04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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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에 시민들이 위협에 대비해 최소 72시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권고했다. 학교 교육과정에도 위기 대응 훈련 과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이어질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우리가 알고 있던 찬란한 문명과 안정된 경제에 비하면 매우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최근 수년간 유럽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지니지 못하다. 난민 문제, 경제 문제, 극우 세력의 정치 장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했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전 세계를 지배해왔던 유럽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정치는 극우화, 경제는 침체

유럽 연합의 권고가 나온 배경에는 최근 유럽이 직면한 복합 위기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정학적 긴장과 에너지 공급 불안, 기후 위기와 자연재해, 사이버 공격·하이브리드 위협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한다. 집행위는 이러한 변화된 안보사회 환경을 고려해 새로운 현실에는 보다 높은 수준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72시간 자급자족이라는 기준은 위기 발생 직후 응급 대응망이 즉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집행위는 가정 내 비상 키트(식수·식량·의약품·현금·손전등·라디오 등)를 준비하고, 가정·학교·지역사회가 초기 72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유럽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대국에 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72시간 버티기를 논해야 하는 초라하고 절박한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 유럽은 전반적으로 큰 위기로 향하고 있다. 우선 프랑스의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정국 운영 난항을 겪었고, 집권 8년 동안 무려 7명의 총리를 교체했다. 특히 올해는 불과 몇 달 사이 세 차례나 내각이 무너지는 이례적 사태가 이어지며, 프랑스 정치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총리 교체가 잦다는 것은 곧 국정 운영이 지속적으로 중단되고 정부 정책의 연속성이 흔들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같은 혼란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악화된 국가 재정이 지목된다.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이미 116% 수준에 달하는 상황에서, 재정 적자 폭도 확대되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마크롱 정부은 예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복지 축소와 공공 지출 조정안을 제시했으나, 이는 즉각 좌·우 정치 세력 모두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국민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복지 축소는 단순한 정책 갈등이 아니라 정권 정당성 자체를 흔드는 문제로 이어졌다.

영국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약 1년 전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며 650석 중 411석을 확보한 노동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지지율 급락에 직면해 있다. 시장에서는 그의 집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9월에만 순차 금융 부채로 2020년 이후 최대 규모인 약 202억 파운드를 빌렸다. 이는 세금 수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채무 이자 비용과 복지 지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성장세 둔화와 생산성 향상 정체이다. 금융위기 이후 노동 생산성이 거의 오르지 않아 연간 증가율이 0.5% 남짓에 머물렀고, 이는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진 수준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공공 부문 효율성이 낮아지면서 국가 경제가 해마다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공공 부문 생산성 하락으로 인해 수십억 파운드 규모의 경제적 손해가 발생한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폭력으로 몸살 앓는 유럽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2023년과 2024년에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독일 경제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의 후유증과 급격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정치적 중도 세력에 대한 신뢰도 약해지고 있다. 특히 독일은 그나마 유럽에서는 제조업 강국으로서 전체 유럽 발전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251013, 블룸버그 통신은 독일 연방통계청의 최근 발표를 인용해 올해 2분기 독일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보다 0.3% 줄었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이미 2023년과 2024년에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한 바 있어, 올해까지 역성장이 이어질 경우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뒷걸음질하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원인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고 볼 수 있다. 전쟁 이후 유럽의 제재 조치가 강화되면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중단됐고, 값싼 에너지에 의존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해 온 독일 경제 모델이 사실상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의존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2020년 이후 독일의 대중국 무역 구조는 크게 바뀌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독일의 중국산 수입은 60% 이상 증가했고, 특히 기계류 수입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후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국산 수입은 줄었지만, 자동차와 공작기계처럼 독일 제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분야가 더 이상 안정적인 대중국 순수출 품목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무엇보다 독일은 중국에 전기차 분야에서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이 독일에 부과한 관세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 소비 위축, 중소 제조업체의 금융 부담 증가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경기 둔화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독일 경제의 침체와 추락은 유럽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이다.

동유럽 정치판도 극우 세력들이 장악하면서 판세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0월 안드레이 바비시가 이끄는 극우 정당 긍정당(ANO)이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이 흐름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한편 6월 폴란드 대선에서는 극우 정당 법과 정의당(PiS)’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후보가 승리하면서 폴란드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드러났다. 이러한 흐름은 유럽 내부의 자유주의적 가치 체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됨과 동시에, 동유럽이 유럽 정치의 변환기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그간 EU 통합 과정에서 겪은 기대와 실망, 러시아와의 에너지 관계, 이민·난민 문제 등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예를 들어 헝가리나 폴란드 등은 EU가 강제하는 이민자 수용 정책이나 난민 분담 정책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국내 포퓰리즘 정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동유럽 내 극우·포퓰리즘 세력이 이제는 독자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폭력도 일상화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영국에서 발생한 세 소녀 흉기 공격 사건이다. 20247월 말, 리버풀 근교 사우스포트(Southport)의 한 어린이 댄스 학원에서 세 소녀가 흉기에 공격당해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17세 청소년이었지만, 온라인에서는 사건 직후 가해자가 이민자이자 무슬림이라는 근거 없는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잘못된 소문은 단시간에 분노를 키웠고, 혼란은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넘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까지 번졌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건 발생 이후 약 열흘 동안 전국 27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폭력 시위가 29건 벌어졌고, 1,800명이 넘는 시민이 체포되었으며 1천 건이 넘는 기소가 이어졌다. 단일 사건이 촉발한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유럽이 다시 회생할 수 있는 기미를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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