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회에 어떤 말들이 미디어에 등장하고 회자되는지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크다. 때로는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극단의 혐오와 적대의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은 청소년에게까지 퍼져 나가 사회 전체를 멍들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막말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정치권이라는 점이다. 여당과 야당, 좌파와 우파라는 극단적으로 양분된 체계 안에서 양 진영은 막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물론 이러한 행태를 일반적인 ‘양비론’으로만 재단하기는 힘들다. 분명 잘못한 쪽, 원천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곳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지적하고 판단하는 언어가 지나치게 과격하면 결국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분열과 증오의 언어 난무
2025년 9월 말 더불어민주당이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 법안’을 추진하자 법원이 사실상의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때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는 글을 올렸다. 물론 정 대표의 논리를 이해할 수는 있다. 전 국민이 단일한 선거일을 통해서 선출하는 대통령도 탄핵되는 상황에서, 임명직인 대법원장이라고 탄핵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어의 품격이다. 정 대표의 말은 “대법원장이 뭔데?”로 요약된다. 직설적이고 감각적인 용어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대법원장의 권위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는 ‘법치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또 김병주 최고위원은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노만석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향해 “경고한다. 제 분수도 모르고 깝칠 때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내용의 전후 사정을 막론하고 ‘깝치다’라는 표현은 분명 격이 낮은 언어임이 틀림없다.
과거 안철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매국노 대통령”, “밀정”이라고 말하자 민주당에서는 “아무리 당대표가 되고 싶어도 대소변을 가리면서 말하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의 “호남에서는 불 안 나나”라는 막말도 있었다.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경북산불특별법) 표결 때 민주당의 표결 참여를 독려하면서 했던 말이지만, 지역을 갈라치는 분열의 언어임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특히 여야 법사위에서는 마치 시장바닥의 언어와 같은 반말이 난무하기도 한다. “버릇없이 굴지 마”라거나 “야, 조용히 해” 등이 등장했다. 물론 서로 감정이 격해져 싸우다 보면 이런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말을 하는 인물들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고, 그 장소는 국회라는 점이다.
유튜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들어 가장 강성 극우적 언사를 퍼붓고 있는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는 자신의 방송에서 “현상금을 걸어서 이재명을 나무에 매달고 밥은 줘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물론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분명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내용이다. 특히 그는 교묘하게 쇼츠 영상의 제목을 달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또 한 번은 “이재명을 살인하라”는 제목이 달린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 내용은 “손현보 목사의 ‘이재명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말이 이재명을 살인하라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내용이었지만, ‘이재명을 살인하라’는 제목 자체만 봐도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그를 ‘살인하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극우 유튜버 전한길 씨는 대통령을 상대로 이러한 막말, 혐오성, 조롱성 발언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언어를 통한 정치
물론 정치인들이 왜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예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은 언론에 조금이라도 더 등장해야 자신의 인지도 유지에 좋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이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한들, 언론에 등장하지 않으면 지역구민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일이 국회의원의 정책을 검토하고 평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렇게 막말을 통해서라도 언론에 자주 등장하게 되면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따라서 인지도는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정치권에서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졌다. 민주당은 소위 ‘개딸’이라는 세력이, 국민의힘은 ‘극우’가 지지를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이들은 매우 강력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특정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고 유지되면 이를 깨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이제 정치인들이 이들 강성 지지층의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회의원의 언어도 점점 험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결국 선거 역시 강성 지지층의 여론이 적지 않게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그들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뭔가 ‘사이다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한다. 다수의 국민은 구구절절한 합리적인 어사보다는 단 한마디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발언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사이다 발언에 대한 욕구가 매우 강하고, 그러다 보니 사이다를 넘어서는 폭탄, 막말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치인들이 그렇게 막말을 쏟아낸다고 해서 일반인들까지 다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롱과 냉소뿐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강대 ICT법경제연구소 연구교수와 윤호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조교수가 정치인의 막말이 현실 속에서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2022년 국정감사 시즌인 10월 1일부터 2023년 10월 27일 국정감사 종료일까지 여야 보좌관 인터뷰, 네이버 뉴스 검색,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검색, 유튜브 댓글 수집 등을 통해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긍정적인 감성은 2.1%에 불과했고, 부정적인 감성은 무려 97.9%에 이르렀다. 또한 대부분은 조롱과 냉소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연구진은 “막말은 국민의 냉소와 비아냥이 겹쳐 정치인에 대한 평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막말을 일상화된 정치 행위로 만드는 것은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드는 데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이런 막말들이 사회 전반적인 조롱성, 혐오성 언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틀니 딱딱거리는 노인을 말하는 ‘틀딱’, 시끄럽게 떠드는 할머니를 매미에 빗댄 표현인 ‘할매미’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영포티’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과거에는 젊은 마인드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40대를 지칭했지만, 최근에는 철없이 20대를 따라 하는 나잇값도 못 하는 40대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조롱성 언어가 반드시 정치권의 막말에서 비롯됐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반적인 사회의 분위기다. 매일 언론에 등장하고 유튜브를 장악하고 있는 각종 쇼츠에서 이들에 대한 조롱, 욕설, 혐오의 정서가 확산되면, 그에 따라서 일반인들의 정서와 언어도 오염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단지 행정과 법을 통해서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