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명함(名銜)에 매몰된 삶-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칼럼]명함(名銜)에 매몰된 삶-조영환 남화토건 전무이사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18.12.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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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 3,40대의 심리적 상태는 무기력이다. 겉으로 보기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책임과 의무에 짓눌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 그들의 진짜 문제는 앞으로 가져가야 할 목표와 지향점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20대에는 꿈꾸어온 미래에 근접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앞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3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이룬 결과물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이젠 꿈에서 내려와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고, 꿈과 현실의 차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때가 된 것이다. 그간 자신이 품어왔던 자아 이상(理想)을 내려놓아야 하는 ‘탈 환상’의 시점이다. 이 시기의 무력감은 불안과 함께 찾아온다. 어느 날 자신의 삶이 예상과는 다른 방향에 와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시작된다. 앞으로 갈 길이 많지 않다는 초조함은 전환에 대한 욕구를 더 간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새로운 목표와 지향점은 불분명하고 동력의 방향 전환은 쉽지가 않다. 이렇게 마흔 전후로 찾아오는 무기력은 발달상 위기의 신호인 것이다.

인정받기 위해 달려왔지만,  지난날 고교 동창생인  한 친구는 전형적인 공무원형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나 부지런함과 친화력으로 공직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속 승진을 했다. 지자체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밤까지 신명나게 일했다. 그러던 중 덜컥 심장에 이상 증상을 느껴 병원에 방문했다. 그는 나이 오십에 이미 고지혈증, 고혈압, 동맥경화를 보이고 있었고 비만이었다. 최근 생긴 심장 이상은 실제는 공황 발작이었고 오래전부터 불면증과 강박증에 시달려왔다고 했다.

자신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그의 몸에는 이미 과부하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한 친구에게 공직은 자신의 유능함을 입증하는 장소이자, 싸움에 이겨 승리하는 전쟁터였다. 그는 ‘나’라는 상품성을 최대한 발휘해 능률을 끌어올리는 데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일이란 인정과 평가를 받는 수단이었고,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높은 지위에 외연을 넓히고, 일을 통해 존재를 인정받는 공직인. 말 그대로 일 중독자였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으로 3개월의 병가를 얻은 그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전에는 인정받기 위해서 일을 해왔다면 이젠 행복해지고 싶어서 일을 합니다.”라며 웃었다. “일을 즐길 줄 알고, 나보다 조직을 키워 멀리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친구는 퇴직 후 세상을 떠났으며 명함도 사라졌다.

과정을 생략하고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대개 명함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짓는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데 명함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그들에게 명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자신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사회적 지위와 동의어가 되고, 조직의 정체성과 동일시된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퇴직하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이때 겪는 박탈감은 생각보다 극심하다. 그동안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이유가 나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자리’ 때문이었음을 비로소 절감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일수록 은퇴 후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훨씬 높다.

온몸을 던져 일궈낸 사회적 성취는 나의 정체성의 한 부분일 뿐이다. 자연인 김 아무개를 규정짓는 정체성은 다양한 개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순하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인 동시에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가 명함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명함에 매몰된 삶을 살아간다.  명함이란 언젠가 사라지고 마는 가변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지위 이외에 자긍심과 존재감을 향유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직업인으로서의 ‘나’외에 나를 규정짓는 다양한 정체성이 자리하는 ‘제3의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재미있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어른들은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반면에 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즐겁다. 작은 재미에도 깔깔거리며 웃고, 시키지 않아도 놀이를 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미국 뉴욕에 세계 최초의 성인 유치원을 열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1세 이상 성인들만 등록 가능한 이 유치원에서는 놀이와 모험, 설렘을 찾는 어른들을 위한 수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이들은 점토 놀이나 색칠 공부를 하고, 간식을 먹은 후에 낮잠을 자고, 한 달에 한 번 소풍도 간단다. 사람들이 어른이 되면서 망각해서 그렇지 인간에게는 심각한 현실을 잊고 재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심각성은 인생을 무겁게 만든다. 무거우면 창의적이기 어렵고 즐거움 또한 누리지 못하게 된다. 앞을 향해 뛰더라도 거대한 목적만이 아니라, 작은 즐거움을 동반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언가 해내야 하는 성장이나 성과가 내 것이듯, 즐거움이나 여유 또한 내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재미있게 살 권리’를 이 혼전 복합 시대에서 조금씩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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