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영리병원이 생기면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
제주에 영리병원이 생기면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
  • 정희
  • 승인 2018.12.2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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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의 허가를 둘러싸고 의료계 및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외국인만 진료한다’는 조건부 허가라고 말했지만, 시민사회 단체에서는 ‘의료 민영화의 출발점이다’라며 거세게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실제 녹지병원 역시 조건부 허가를 받은 하루 뒤에 곧바로 ‘내국인 제한 진료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에 영리병원이 생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
제주도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의 조감도
제주도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의 조감도
 
자본이 몰리면서 의료민영화 대란 발생
영리병원은 말 그대로 외부의 투자자가 병원 설립에 관여하고, 그 수익금을 가져갈 수 있는 병원이다. 이는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문제가 됐던 ‘의료민영화’라는 문제의 연장 선상에 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공공성을 명확하게 지키고 있으며 건강의료보험이라는 국가적 단위의 단일한 보험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계 녹지그룹이 투자하는 제주녹지병원은 이러한 공공성에 반하는 첫 번째 병원이라는 것이 문제다.

영리병원이 활성화되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건강보험 체계가 무력화되고 의료비 자체가 폭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고급 영리병원은 높은 연봉으로 유명 의사들을 싹쓸이해서 데려오고 값비싼 장비를 설치할 수가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의료비를 올릴 수 있는 명분이 된다. 물론 현재로서는 제주도 역시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행 법으로는 내국인 진료를 막은 방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돈이 있는 부자들은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다’라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이런 병원을 이용할 수가 있게 된다.
 
문제는 다른 병원들 역시도 돈벌이가 되는 ‘비급여진료’를 확대하게 되고, 이는 또다시 의료비의 증가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서민들로서는 아픈 것도 고통스러운데, 돈이 없어서 또다시 서러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 서비스의 이용에 있어서 계층화가 생기고 양극화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돈이 없는 사람은 생명도 지킬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의료만큼은 민영화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불어 이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무력화된다는 문제도 생긴다. 영리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반병원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건강보험료를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반발을 하면서 국가의 보험체계 자체를 흔들 수도 있다. 혹여라도 그들이 법정 소송에서 승리하게 되면 건강보험에 대한 이탈이 폭주할 수 있으며, 이는 또다시 서민 의료의 질을 낮추게 된다. 돈이 부족한 보험공단은 보장범위를 축소해 그 손실분을 메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공공의료기관들 역시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지 못하게 되고, 가난한 자들만이 질 낮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인 전우용 박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서 ‘영리병원이 확산하면 공공의료기관은 빈민 치료소로 전락하고 만다’라고 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불어 제주도에 영리병원이 생기게 되면 다른 경제자유구역에서도 영리법인에 대한 허가요청이 늘 수 있다.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대구·경북, 새만금·군산, 충북, 동해안권 등 총 8개의 나머지 지역으로도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 선례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명분도 없다. 이렇게 해서 영리병원이 하나둘씩 생기면 이제 상황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할 수밖에 없다.
 
근원적인 책임은 박근혜 정부
또한, 병원 노동자의 삶의 질도 저하된다. 제주도와 같은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노동법이 예외이기 때문에 병원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하거나 혹은 외국 손님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영어가 가능한 동남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을 값싸게 고용할 가능성도 크다.
 
더불어 이러한 의료 민영화의 경우 현 정부의 정책과도 배치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공약으로 ‘의료 영리화 정책 저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 특별자치구를 중심으로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 국가의 의료체계에 큰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알면서도 왜 원희룡 제주지사는 영리병원을 허용한 것일까? 사실 녹지병원은 도입을 추진한 지 무려 13년 만인 지난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가 사업계획을 승진해주었으며, 2017년 준공이 완료됐다. 이후 녹지병원은 134명의 인력까지 채용 개원준비를 마쳤지만, 제주도가 허가를 미루면서 매달 8억 5천만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녹지병원을 허가해준 것에는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이 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2018년 12월 5일 제주도 영리병원 관련 기자회견을 실시한 원희룡 도지사
2018년 12월 5일 제주도 영리병원 관련 기자회견을 실시한 원희룡 도지사
 
“(녹지병원에 대한) 개설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국내법원에서 손해배상 판결이 날 것이 뻔하고 지자체와 중앙정부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더불어 원희룡 지사는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 재도약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경제적 필요성을 허가의 이유로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값비싼 의료비를 받는 영리병원이 생긴다고 더 많은 관광객이 제주도를 찾거나, 혹은 지역 경제가 많이 발전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손해배상의 문제로 의료를 민영화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그러나 만약에라도 이번에 녹지병원에 대한 허가가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영리병원은 제주도를 공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사실 지난 2014년에도 ‘싼얼병원’이라는 중국계 자본의 병원 설립이 추진된 바가 있다. 싼얼에 이어 녹지병원까지, 다음에는 또 어떤 중국계 자본이 제주도를 노릴지 모를 일이다.

사실 이 문제의 근원은 박근혜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녹지그룹에 설립허가를 내준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시민 단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복지부의 승인절차가 투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를 밀어붙였고 ‘의료를 돈벌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주 녹지병원의 설립과 관련한 문제는 그저 ‘제주도라는 지역에 하나의 병원이 생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의료민영화로 가는 판도라의 상자이고, 국민 건강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재앙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눈앞의 손해배상, 관광객 유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작은 문제로는 결코 섣불리 다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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