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란조끼에 백기든 마크롱, 반서민 정책에 들끓은 프랑스 국민들
[국제] 노란조끼에 백기든 마크롱, 반서민 정책에 들끓은 프랑스 국민들
  • 박경민
  • 승인 2019.01.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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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조끼 시위의 요구에 대해 전격적 수용 의사를 밝혔다. 페이스북을 통한 유류세 인하 청원으로 불붙은 지난 11월 17일 첫 시위 이후 4주 만이다. 노란조끼 시위는 별도의 수장이나 배후 세력 없이 국가 정책에 영향을 끼친 의미 있는 대중운동의 선례로 남게 됐다.
 
백기든 마크롱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2월 10일(현지시각)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란조끼 시위가 요구한 최저임금 인상 및 저소득 연금생활자 사회보장세 인상 철회 등에 대해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유류세 인상, 전기‧가스요금 동결,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강화 유예 백지화에 이어 추가적인 여론 진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대국민 담화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대의 분노는) 깊고, 여러 측면에서 합법적이다”며 시위의 폭력성에 대한 비난을 철회했다. 또한 “집회 초기 국면에서 제대로 답을 드리지 못했고, 주의 깊지 못한 발언으로 여러분께 상처를 드렸다”고 자세를 낮췄다. 단점으로 지적된 훈계조의 직설화법에 대해서도 “많은 분께 상처를 드려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죄의 의사를 표현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프랑스 국민들에게 약속한 조치는 최저임금 인상, 저소득 연금생활자 세금 인상 및 초과근무수당 과제 철회 등 세 가지다. 먼저 최저임금은 2019년부터 월 100유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의 현재 최저임금은 세후 월 1185유로로 환화 약 153만원에 정도다. 2019년부터는 약 13만원이 오른 166만원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인상분은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인상은 그간 실업률을 상승시킬 수 있다며 거부하던 기존의 입장을 철회한 것으로 9%에 달하는 프랑스의 실업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르콩 정부가 백기를 든 것으로 평가된다. 저소득 연금생활자에 대한 세금인 사회보장기여금(CSG) 인상도 취소했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부터 월 2000유로(약 260만원) 미만을 버는 은퇴 연금생활자가 내야 하는 CSG를 1.7% 올리려 했다. 초과근무수당에 대한 과세도 철회하게 됐다.
 
다만 부유세에 대해서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여기서 뒤로 물러나면 프랑스는 약해질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유세를 물리면 투자 의지가 위축돼 경제 활력을 불어넣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부유세는 1980년대 사회당 정부 때 도입된 것으로 130만 유로(약 17억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개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후 투자 촉진을 명분으로 기존의 부유세를 부동산자산세로 축소, 개편함으로써 사실상 부유세를 폐지한 바 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중요시하고 사회 환원을 높게 평가하는 프랑스에서 부유세 폐지는 마크롱 대통령을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비난 받게 했다. 노란조끼 시위에서도 부유세는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세금을 더 신속하게 내리고 정부 지출을 통제하는 등 강력한 조치로 사회경제적 위급함에 대응하겠지만 유턴을 하지는 않는다”며 국가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변함이 없음을 증명했다. 부유세 또한 탈세‧탈루 등 자산가들의 조세 회피를 근절하고 공공지출을 감시하는 등 간접적 방법으로 견제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페이스북에서 전국으로 확장된 노란조끼 시위
노란조끼 시위는 최초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청원 글에서 시작됐다. 마크롱 정부는 경유와 휘발유의 유류세를 각각 23%, 15% 인상해 논란이 됐다. 유류세 인상은 다수의 저소득층 국민들에게 불만을 만들었다. 트럭 운전자 등 운수업 종사자들과 도시 주변부로 주거를 형성하는 저소득층이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매일 차량을 통해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유류세 인상은 생활을 버겁게 하는 반서민적 정책이었다. 이들의 불만은 시위나 조직적 행동으로 표면화되진 않았다. 파리 시민의 유류세 인하 청원 글이 계기가 됐다. 파리 동부 센에마른에 거주하는 프리실리아 루도스키는 휘발유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청원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글을 본 같은 지역 트럭 운전사가 페이스북에 해당 글을 공유한 후 유류세 인상 등에 대한 공감대에 불이 붙었다. 언론 매체들은 잇달아 관련 사안을 다루기 시작했고 청원은 시위로 확장됐다.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1차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30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유류세 인하 촉구를 요구하면서 시작된 시위는 점차 마크롱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책 방향과 태도, 부유세 환원, 일자리 및 복지 개선 등의 요구로 변화하면서 대정부 시위로 확장됐다. 프랑스 정부에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노란조끼 시위의 특이한 점은 특별한 주동자나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표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임금과 생활수준 하락, 악화하는 복지 정책들에 대한 순수한 공감이 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래서 노란조끼 시위는 지도자도 없고 조직도 되지 않은 다수의 시민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노란조끼를 입게 된 이유도 서민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2008년부터 프랑스는 사고나 비상상황에서 인명 구조를 원활히 하기 위해 운전자가 차에 형광 노란 조끼를 의무적으로 비치하도록 했다. 결국 시민들은 반서민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마크롱 정부의 정책을 멈춰 세우고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중 다수는 마크롱 대통령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다만 시위가 폭력적 성향을 강하게 띄었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1차 집회 이후 노란조끼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격화해 3차 집회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인명 피해와 재물 손실을 입혔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주변 상점들은 상당수 약탈당하고 차량들은 시위대의 화염병 투척으로 불타는 등 피해를 입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3차 집회의 부상자는 263명에 달했고 4차 집회에서도 1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노란조끼 시위는 반서민적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발해 정책에 영향을 끼친 유의미한 시위로 기록될 수 있지만 폭력성에 대해서는 떳떳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시위 방식을 바꿨다면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없었을지 모른다.
 
 
일부는 마크롱 대통령의 전면적 양보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쟁점이 됐던 부유세 폐지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고 대입제도 개선과 대학생 등록금 인상 문제 등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도미니크라는 이름의 시위자는 “마크롱은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며 “그는 물러나야 한다”고 여전히 퇴진을 요구했다. 또한 노란조끼 시위대의 뱅자맹 코시는 “그것은 정치적 방향의 변화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산 조정”이라며 “프랑스인이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시위는 다소 잠잠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대대적인 양보를 보여준 마크롱 대통령의 조치가 시위 동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분석가 도미니크 무아시는 AP통신을 통해 “휴가철이 다가오고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적 차원의 토론이 시작되면 노란조끼 시위도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지난 12월 8일 시위는 11월 29만명이 모인 첫 시위 보다 절반이 넘게 감소한 13만 6000명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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