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호떡 팔아 1년 만에 회사 규모 3배 키울 예정”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제 호떡 청담식품 정재수 대표
“미국에 호떡 팔아 1년 만에 회사 규모 3배 키울 예정”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제 호떡 청담식품 정재수 대표
  • 박보영
  • 승인 2019.03.2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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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는 7천 원밖에 없었다.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15년 전 대전에서 1억짜리 아우디를 타고 아닌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15억을 벌었다. 당시 대전지역 신규 건설 아파트 한 채가 6천만 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는 결국 병원에서 다시 깨어났다. 그는 창피하기 이를 데 없었고 결국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일명 ‘호떡 장사’였다. 그런데 그 별 것 아닐 것 같은 호떡 장사가 평창 올림픽, 패럴림픽 먹거리 남품 업체가 되더니 이제 미국으로 진출한다. 청담식품 정재수 대표의 이야기다. 도대체 어떤 호떡이길래 미국으로까지 팔려가는 호떡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의 ‘롤러코스터 인생’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정 대표를 직접 만나보았다.
 
청담식품 정재수 대표
청담식품 정재수 대표
 
단 1분의 시간이 바꾼 그의 운명
그의 사무실에는 그의 책상이 없다. 얼마 전에 싹 치웠다고 한다. 영업을 뛰어야 하는 마당에 무슨 책상이 필요하냐는 이야기다. ‘좋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잠만 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하다. ‘호떡’이라고 하면 서민들의 간식이라는 이미지다. 어쩌면 호떡을 반죽하던 길거리 음식점 아주머니의 손길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에서 반죽을 만들어 그 반죽으로 완제품 호떡을 만들어 낸다. 청담식품이 하는 일은 바로 이 반죽을 만들어 반제품의 호떡을 납품하는 것이다. 파는 사람들은 그저 기름에 굽거나 혹은 특별한 조리도 필요 없이 전자렌지에 40초만 돌리면 마치 방금 구운 듯한 수제 호떡을 먹을 수 있다.

“작년에 미국에 첫 수출을 했는데, 6만 2천 개, 돈으로 따지자만 4천 3백만 원어치를 팔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수출량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절대 수출량이 작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처음 제가 호떡 장사할 때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장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청담식품이 오기까지 정말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 세계에서 팔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호떡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사실 그는 사업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군대 졸업하기 전에 상관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취직을 시켜주었지만, 자신도 도저히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아버님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봐서 해군본부 공무원을 일하기 시작했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때려치웠다고 한다. 군무원 첫 월급 41만 원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건설기계, 자동차 관련 사업을 했다. 그렇게 해서 20대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 통장에는 15억 원의 현금이 있었다. 수입 자동차 1억짜리 아우디 정도는 아무런 부담도 없이 끌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폭망’ 을 한 후 자살까지 결심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정재수 대표의 삶은 늘 롤러코스터였다. 수중에 1만 원도 없는 때가 있는가 하면 한 번에 수천만 원을 벌기도 했다. 그 이후 그에게는 하나의 삶의 철학이 생겼다고 한다.

‘돈은 필요 없다. 밥만 먹고 살면 된다.’

워낙 많은 돈을 벌기도 해보고 잃어버리기도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돈은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반죽 장사를 시작했고, 주변의 함께 했던 직원들로 인해서 반제품 시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은 점점 떨어져 가고,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아무리 레시피를 바꿔봐도 ‘기가 막히게 맛있는 호떡’이 탄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거의 포기할 무렵, 마치 기적처럼 한가지 레시피가 떠올랐다. 그 단 1분의 시간이 그의 운명을 다시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 제품의 차별화는 결정적으로 레시피에 있습니다. 다른 반제품 호떡도 많지만, 대기업 외식 담당들과 만나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100% 저의 제품이 제일 맛있다고 지목합니다. 일단 저희 제품을 한번 맛본 사람은 도저히 다른 반죽을 쓸 수가 없습니다. 밀가루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입에서도 들러붙지 않습니다.”
 
올해부터 미국 시장 본격 진출
거기다가 정재수 대표는 매우 다양한 차별화 포인트를 호떡에 담았다. 과거에는 설탕이 꿀 정도를 담았지만, 현재는 다양한 보조 재료들이 들어간다. 꿀은 물론이고 씨앗, 고구마, 팥을 기본으로 하며 다양한 특산품들이 반죽에 함께 들어간다. 꾸지뽕, 복분자, 대추, 울금, 감귤, 매실, 메론, 유자해초, 모시토마토 등이 그것이다. 이는 호떡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청담식품의 호떡
청담식품의 호떡
 
“유통 및 판매처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미니스톱과는 호떡꼬치를 제작해 납품할 예정이고, GS25와 세븐일레븐은 그들이 원하는 스펙으로 호떡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설빙은 이미 작년에 계약을 해서 현재 많이 팔려나가고 있고, 최근에는 청정원과도 미팅을 했습니다. 방부제도 없이 냉장유통 20일 정도로서 시장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말 그대로 ‘엄청난 고난의 시절’을 겪었다. 지난여름, 직원들 사줄 밥값이 없었던 정 대표는 돈이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고 “요즘에 너무 더우니까 내일 하루는 집에서 푹 쉬어라”고 했던 것. 하지만 다음 날 직원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 저희 돈 있으니까 밥 드시러 오세요”라고. 그때 그는 정말로 울컥했다고 한다. 그 힘든 시기를 함께 견딘 직원들이 있으니 쉬려고 해도 쉴 수도 없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사업의 터닝 포인트가 됐던 것은 바로 지난해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먹거리 납품업체로 선정되어 현장에서 호떡을 팔 수 있었던 점이다. 당시 하루 매출만 1,280만 원. ‘기가 막히게 맛있게 호떡’을 향한 정재수 대표의 신념이 결국 빛을 발한 것이다.

이제 정 대표의 눈은 미국으로 향해 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밥 먹을 돈이 없을 정도’의 상태에서 이 정도까지 일궜다면 이제 전 세계를 상대로 호떡을 팔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호떡이 ‘겨울에 먹는 간식’이라고 하지만,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그런 문화적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민족이 좋아하고, 어느 지역에서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올해 여름부터 2~3군 데 매장에서 호떡을 팔아볼 생각이고, 그것이 성공하면 유통과 판매처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조만간 미국 전역 500군데를 확보해 호떡을 팔 예정입니다. 아마도 딱 1년 뒤 이맘때쯤이면 회사는 지금보다는 3배가 더 커져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호떡이라는 단순한 간식을 한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정재수 대표. 이제는 그의 인생이 더 이상 롤러코스터가 아직 ‘수직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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