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 떠났어도 세계 경영은 계속된다
김우중 회장 떠났어도 세계 경영은 계속된다
  • 정하연
  • 승인 2020.01.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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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정신을 이어 세계로 뻗어 나갈 GYBM의 한국 청년들
지난 12월 9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한편으로는 ‘세계 경영을 꿈꾸었던 기업가’이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사범’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분명 그가 한국 경제에 남긴 큰 족적만큼은 부인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1967년에 대우실업에서 출발, 한때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을 만들어 냈다. 특히 그는 ‘세계 경영’을 외치며, 국내 기업들의 초기 글로벌 진출을 독려했다. 그가 남긴 ‘글로벌 청년 사업가양성 사업(Global Young Business Manager·GYBM)‘은 다 이루지 못한 글로벌 진출의 선봉이다. 2009년 시작된 GYBM 사업은 현재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4개국에서 취업하거나 사업하는 청년 1,000명을 넘게 길러냈다. 가히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청년 사업 네트워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지난 12월 14일은 GYBM의 4개국 총동문회가 개최되어 김우중 회장을 추모했다.
 
대우그룹의 전 회장 김우중이 남긴 글로벌청년 사업가 양성 사업(GYBM) (그래픽=대우GYBM홈페이지)
대우그룹의 전 회장 김우중이 남긴 글로벌청년 사업가 양성 사업(GYBM) (그래픽=대우GYBM홈페이지)
 
인재양성을 위한 철저한 교육
GYBM의 뿌리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2011년부터 베트남에서 해왔던 청년 해외 취업 프로그램이다. 당시만 해도 아직 창업으로 사업을 직접 꾸리는 수준은 아니었고 취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09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출범하고 사업을 해나가자 청년들의 인재양성이 절실했다. 생전에 김우중 회장은 이 사업에 큰 관심을 가겼고, 또 집중적으로 교육생들을 매출했다. 그러나 보니 ‘김우중 사관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GYBM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대우의 역사는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제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기 위해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내가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이들(교육생)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죽으면 세상에 흔적을 잘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영광이다.”

평소 그는 이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이러한 거대한 네트워크를 꿈꾼 것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들의 힘을 경험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화교들은 동포들과 함께 사업을 하기 위한 단단하게 결속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우중 회장 역시 이러한 모습을 무척 부러워했다고 전해진다. 

더불어 김 회장은 한국인들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청년처럼 똑똑한 젊은이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처음에는 아무런 꿈과 열정이 없던 청년조차 3개월만 교육을 하다 보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한국인들에 대한 강한 자부심, 그리고 화교들의 일치단결된 힘을 보고 ‘우리도 못할 게 뭐가 있냐’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GYBM은 초창기에는 40여 명 정도를 선발하고, 철저한 교육을 거쳐왔다. 지금은 교육생들이 더 많아 한해에 150명 정도가 선발된다. 짧은 교육 과정임에도 취업률이 100%에 이르는 것은 새벽 5시부터 밤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집중적인 교육 덕분이다. 이러한 ‘스파르타식 교육’에 몸과 마음은 힘들지만, 끝났을 때는 그만큼 성취감도 크다고 한다. 또 엄격한 내부 규율 덕분에 교육생들은 스스로의 생활습관을 되돌아보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교육 이후 곧바로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일단 중급 이상의 언어를 교육하고, 현지 문화를 철저하게 습득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사업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GYBM를 향한 김우중 회장의 애정이 강해서일까? 교육생들은 그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많은 감동을 하고 또 가슴 깊은 열정을 만들어왔다. 청년들은 ‘한정된 파이’에 머무르지 말고 세계로 눈을 돌려 더 큰 파이를 찾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또 젊은 시절 도전의 아름다움과 그 고생의 숭고함에 대해서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10년 후 최대 3만 네트워크 기대
김우중 회장은 교육생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립 초창기 교육생들의 기숙사 침구까지 직접 챙기기도 했으며, 가끔 직접 삼겹살 파티까지 열어주고, 정기적으로 7~8명과 직접 함께 식사하며 모든 교육생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지난 12월 14일은 GYBM의 4개국 총동문회가 개최된 날이다. 김우중 회장이 별세한 후 5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김 전 회장에 대한 추모 행사이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 회장을 기리는 발언들이 많이 나왔다.
“이 자리에 김 전 회장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김 회장의 유지를 잘 받들어 최선을 다하겠다.”(정병주 대구세계경영연구회 회장)
“한국과 베트남 관계의 발전에서 김 회장이 했던 역할을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정우진 주베트남 총영사)
“김 회장은 마지막까지 이 교육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이 사업이 꾸준하게 지속되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하노이 한인상공인연합회 홍선 부회장)
“김우중 회장님에 우리에게 큰 유산을 남겨주셨다. 우리 중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사업가가 나올 때까지 총동문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씀처럼, 사업일꾼이 될 동문회로 만들어가겠다.”(김보원 초대 GYBM 총동문회장)

무엇보다 이날 행사에는 매우 뜻깊은 사람이 찾아왔다. 바로 GYBM 최초의 졸업생이었던 백지우(30·여성)였습니다. 그녀는 졸업 후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나이키 현지 제조공장에서 2,000명이 근무하는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해외 취업의 꿈을 열어준 김우중 회장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녀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회장님 덕분에 해외 취업의 꿈을 이뤘다. 도전 정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 생전에 회장님을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사람을 아끼는 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아세안 지역에서 많은 기반이 많지 않았던 2011년부터 한국 청년들을 양성해온 김우중 전 회장. 아마도 생전 소원대로, 그는 ‘대한민국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준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향후 10년 후 GYBM는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꿈꾸고 있다. 김우중 회장이 세상을 떠난 세월이 길어질수록, 그가 남긴 과실은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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