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16:56 (금)
젊은층의 파노플리 심리와 현대인의 외로움
젊은층의 파노플리 심리와 현대인의 외로움
  • 정하연
  • 승인 2020.11.24 14: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사회의 소비는 과거의 소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과거에는 ‘필요’, ‘욕구’라는 것에 의해서 소비가 되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행복’하기 위해 소비한다. 이를 간파하고 체계적으로 이론을 설파했던 사람은 프랑스의 지성,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소비사회를 절대적으로 보증하는 것이며, 글자 그대로 ‘구원’과 동의어이다.”
소비하지 않은 인간은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고, 소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성장을 확인하고 심리적 만족감을 얻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계량화’와 ‘집단화’의 개념이다. 보들리야르는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계량화되고 집단에 소속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 지점이 방탄소년단의 CD와 LP가 어마어마하게 팔리는 현상과 연결된다. 

 

(사진= unsplash)
(사진= unsplash)

계량화된 소비로 행복감 느껴
이제 방탄소년단의 인기를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중요한 문화적 현상 하나가 있다. 바로 20대 젊은 팬들이 방탄소년단의 CD와 LP를 모은다는 점이다. 하지만 요즘 CD나 LP로 노래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들으면 유튜브에서도 어렵지 않게 뮤직비디오를 볼 수도 있다. CD와 LP는 한마디로 별 소용이나 쓰임새가 없는 물건들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CD는 한국에서만 무려 2,000만 장이 팔렸다. 물론 이것을 ‘소장품’이나 ‘애장품’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최소한 눈으로 보면서 뭔가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CD와 LP는 아무리 보고 있어도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젊은 층의 이러한 소비심리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보드리야르가 소환되어야 한다. 우선 그는 소비가 ‘계량화’ 되어야 한다고 봤다. 즉, 자신, 혹은 남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뭔가 측정되는 단위로 존재해야 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BTS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스마트폰 안에, 혹은 인터넷 세상에만 존재한다. 계량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서 CD와 LP가 등장한다. 이런 물건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한 장, 두 장’이라고 셀 수 있으니 계량화에 용이하다. 이렇게 계량화된 소비를 통해서 팬들은 CD와 LP를 간직하고 그것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또 하나는 프랑스어로 ‘집합’을 의미하는 파노플리(Panoplie)이다. 팬들은 이런 제품들을 사면서 자신이 특정한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비로소 ‘진정한 팬’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한다. 그리고 이런 소속감에서 또 한번의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량화, 집단화라는 두 가지가 드디어 소셜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이들의 소비는 완성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CD와 LP 사진,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스티커, 엽서, 사진을 올리면서 최종적으로 뿌듯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이러한 심리는 BTS의 팬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브랜드에 대한 광적인 충성도라는 것 역시 비슷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정작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를 보지 않더라도 값비싼 시계를 사고, 잘 쓰지도 않는 고급만년필을 사는 일도 비슷하다. 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 위상과 계층을 스스로 정하고, 그 안에 소속되었음을 만방에 알리게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소속감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인간에게 ‘소속감’이 왜 그리 중요하냐는 점이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수많은 온라인 카페나 모임 등을 통해서 소속된 곳이 너무 많아서 문제이기도 하다. 또 온라인상에서는 친구를 만들기도 너무 쉽기 때문에 오히려 소속감이 피곤함을 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이 소속감 역시 행복이라는 것과 매우 연관이 깊다. 
영국 퀸메리대학의 몬트세라트 귀베르나우 교수는 그의 저서 <소속된다는 것>에서 ‘개인은 집단에 소속됨을 통해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고 설파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소속되었다는 것은 ‘이방인으로 당하게 되는 배제와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끝없이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는 소속감을 원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천지 사태’ 역시 이러한 소속감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신천지의 교리에 빠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종교인의 시선으로 봐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혹은 일반인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교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신천지가 ‘현대사회가 주지 못하는 소속감과 친밀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정작 내면에서는 공허감과 무력감, 사람과의 관계에서 깊은 단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신천지가 파고들어간 것은 바로 이러한 현대인의 심리적 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이 신천지의 주류가 젊은층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BTS의 CD와 LP의 주요 소비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말은 곧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층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천지와 BTS의 팬을 단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한쪽은 사회에 폐를 끼치는 사이비 종교의 주종자들이고, 또 한쪽은 건전한 아이돌의 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움직이는 내부적인 기제만큼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보아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대인’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의 뿌리는 ‘현대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한 극한의 경쟁과 그로 인해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같은 반 친구도 결국 시험에서는 ‘경쟁자’가 되고 있으며, 누군가 배제되어야지만, 내가 인정받을 수 있다. 거기다가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놓고 뺏고 빼앗기는 모습도 연출되고 있다. 이 안에서 싹트는 것이 바로 ‘혐오’이기도 하다. 남성혐오나 여성혐오가 가장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원리 자체를 바꾸지는 못했다. 즉, ‘민주주의’라고 해서 곧바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사고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1125)
  • 대표전화 : 02-780-0990
  • 팩스 : 02-783-25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운정
  • 법인명 : 데일리뉴스
  • 제호 : 종합시사매거진
  • 등록번호 : 영등포, 라000618
  • 등록일 : 2010-11-19
  • 발행일 : 2011-03-02
  • 발행인 : 최지우
  • 편집인 : 정하연
  • 종합시사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종합시사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isanewszine@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