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많은 방면에서의 ‘양극화’를 만들어 냈지만, 그 중에서도 소비심리의 양극화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4월 19일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화점들의 봄 정기 세일 매출이 지난해 보다 무려 50%나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 명품 매출은 65%로 늘어나 다른 품목의 매출을 압도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다른 한편으로 중고거래도 대폭 늘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통계 검색 결과에 따르며,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헬로마켓, 옥션중고장터 등 중고거래 앱 이용자는 1년 전 약 5천 4백만 명에서 1억 1천만명으로 약 2배 이상이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짠테크’의 일종으로 불리는 중고제품 거래의 활성화. 그 이면에 소비자들의 어떤 심리가 숨어 있는지를 분석했다. /편집자주
옷과 책, 코로나 이후 1, 2위로 등극
아마도 최근 우리 국민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채소 이름은 ‘당근’일 것이다. ‘동네 생활 서비스’를 표방하는 당근마켓의 폭발적인 성장세 때문이다. 당근마켓은 지난 2020년 9월을 기준으로 이미 월 사용자 1000만 명을 돌파해 이른바 ‘국민 앱’의 반열에 올랐다. 2015년 판교 지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원하는 지역 주민들을 연결해주면서 폭발적인 지역 기반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내가 사는 인근의 주민들과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따라서 집에서 쓰지 않는 소소한 물건을 당근마켓에 팔아 용돈을 벌거나, 필요한 물품을 사면서 쇼핑 욕구를 만족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애초 중고거래의 원조는 중고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중고’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을 때부터 중고나라는 값싸게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 이러한 중고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발달한 것은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의 위축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일단 중고제품의 경우, 새 물건을 사는 것에 비하면 최대 50% 이상 저렴할 뿐만 아니라 관리만 잘하면 거의 새 제품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의 연간 지출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비지출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월평균 240만 원으로 1년 전의 245.7만 원에 비해 낮아졌다. 퍼센트로 따지면 2.3%밖에 안 되지만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큰 폭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소비지출에서 조금 더 눈여겨 봐야 할 점은 바로 식료품, 비주류 음료에 대한 소비는 오히려 14.6%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즉, ‘전체적인 소비지출은 줄었지만, 식료품, 비주류 음료는 늘었다’라는 점은 반대로 ‘식료품, 비주류 음료 이외에는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였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급격하게 위축된 소비심리가 바로 중고거래를 활성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중고거래의 활성화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간 ‘중고거래’라고 하면 ‘남이 쓰던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새 물건을 살 돈을 아끼려는 사람들의 거래 방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러한 인식이 다소 달라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문제에 따른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고자 하는 젊은 층이 대폭 늘어났다는 것. 또한, 이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는 경향도 강하기 때문에 무조건 새 물건을 선호하지 않으며,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가격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성향과 맞물리고 있다.
사기 안전장치도 마련돼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방송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tvN의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내용은 복잡한 집안을 정리하면서 쓰지 않는 물건을 ‘번개장터’에 내놓는 내용이다. 연예인들이 중고 물품을 내놓는 모습은 더 이상 과거의 ‘중고’의 이미지가 아니며, 그 결과 중고제품에 좀 더 친근해질 기회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중고거래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을 보는 것도 최근의 소비 트렌드를 알아보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2019년에 당근마켓과 중고나라의 판매 1, 2위 제품은 아이폰과 카메라였다. 이 당시만 해도 다소 고가의 제품을 싸게 가려는 의도가 강한 소비 트렌드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2020년에 접어들면서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이폰과 카메라는 5위와 6위로 떨어지더니, 2021년에는 다시 6위와 7위로 떨어졌다. 그 대신 2020년과 2021년 공히 1위는 옷, 2위는 책이 차지했다. 책이 많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 때문인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렇듯, 옷과 책은 그리 고가의 제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렴한 제품을 더 저렴하게 사려는 심리가 발동된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침대나 의자, 화분 등의 제품들이 많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집콕’생활이 반영되었다.
이렇게 중고거래가 활성화되다 보니 새 제품을 산 후, 이용할 때에도 관리에 매우 신중을 기하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제품이 지겨워질 때면 언제든지 다시 내다 팔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돈을 내고 내가 편해지자고 산 물건을 지나치게 애지중지하는 것도 피곤한 일일 수도 있지만, 중고거래를 자주 하는 알뜰한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피곤함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 이런 중고거래 활성화의 배경에는 사기 거래에 대한 안전장치의 확산도 한몫하고 있다. 2006년부터 범죄 피해 방지와 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치트’가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 휴대전화 번호나 계좌번호를 조회하면 사기 전력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중고거래 앱을 까는 사람들은 이 더치트 앱도 필수적으로 까는 경우가 많다. 또 각종 중고거래 앱 자체에도 메신저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증받은 판매자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있는 요소도 있다.
중고거래가 이렇게 활성화되다 보니 심지어는 백화점에서도 중고거래에 뛰어들기도 한다. 최근 현대백화점은 운동화, 가구, 명품시계 등 소비자들이 한번 샀던 중고제품을 다시 진열해 판매하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역시 압구정동 명품관에서 해외 중고 신발 등을 판매하고 있다. 다만 나이키 에어 조던 운동화 등은 그 가격대가 5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들이 중고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그 규모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을 제외하더라도 무려 15조가 중고거래로 이뤄진다. 특히 백화점이 거래에 나선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더욱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중고거래는 코로나19가 잦아들어도 계속해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고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을 뿐만 아니라, 한번 중고거래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비슷한 소비패턴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