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책은 ‘혼자’ 읽는 매체라는 인식이 강하다. 조용한 곳에서 커피 한 잔 놓고 사색의 세계에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함께’ 읽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같은 책을 읽은 후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다른 이들의 감정까지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다. SNS의 발달로 함께 하는 사람을 모집하기도 편리해졌지만,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욕망도 강한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최소한 이곳 북클럽에서만큼은 책에 대한 무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펜데믹 시대에 소통이 줄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북클럽을 통해서 타인과의 소통까지 넓히고 있다. /편집자주
공공기관, 출판사 주도하고 자발적 모임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에서 콘텐츠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는 물론이거니와 전자책을 읽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도 훌쩍 늘어났다. 최근 전자책 구독서비스 ‘북클럽’의 상반기 가입자 수는 지난해 하반기 가입자 수보다 약 60%나 폭증했다. 지식 구독 서비스인 ‘퍼블리’역시 직장인들의 이용이 대폭 늘어났다.
이러한 지식과 책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책을 함께 있는 모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올해 2월 종로구는 ‘종로1787행북(happy books)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종로의 행정동 수 17과 법정동 수 87을 합쳐서 이름 지은 이 북클럽에서는 매월 도서를 읽고 함께 토론하고 글쓰기도 해보는 활동을 펼치게 된다. 종로구는 지난해 3개월간 지역 독서 동아리를 기반으로 행복클럽을 시범 운영한 바 있다. 그 결과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71%, ‘만족하다’는 29%로 참여자의 100%가 만족 의사를 표시하는 놀라운 결과를 도출했다.
최근 전남 장성군에서는 ‘2021년 독서문화진흥계획’을 발표하면서 군민들의 다양한 독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독서환경 조성 ▲책 읽는 즐거움 확산 ▲독서문화 사각지대 활동 지원 ▲스마트 도서관 서비스를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정해진 책을 읽은 후 함께 토론하는 ‘랜선으로 만나는 북클럽’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자생하는 북클럽도 꽤 많이 활성화되고 있다. 지금의 펜데믹 시대라서 함께 모여서 토론하지는 못하지만, 화상회의 툴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북클럽의 인기는 지난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 모임 참여율은 3.4%로 2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또한, 당시 <이젠, 함께 읽기다>,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등의 책이 출간되면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업도 매우 다양하다. 주부나 자영업자는 물론이고 예술가, 군인, 학생, 교사 등 폭넓은 사람들이 참여해 자기 생각을 나누고 있다. 출판사에서도 자체적인 독서모임을 꾸리고 있다. 국내의 가장 대표적인 출판사인 민음사와 문학동네는 일정한 회비를 내면 책을 보내주고,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나라 성인의 독서량은 매우 적다. 2019년도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의하면 종이책 기준 1년간 성인 독서량이 단 6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에 대해 느끼는 열정은 대단하다. 1년에 100권 읽기를 자신의 목표로 잡는 것은 물론이고, ‘살아서 1000권 읽기’를 실천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길
그렇다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이들은 북클럽에 애정과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우선 소통이 줄어든 시대에 소통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모임이 금지되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 외로움에서 벗어나 소통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강렬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고 해서 아무나 붙잡고 대화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서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매우 강한 유대감과 공감대가 형성되고, 소통의 원활해질 수 있다. 특히 책이란 매우 신뢰할 만한 매체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편협된 지식을 얻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책은 기본적으로 출판사에 의해 일단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함께 소통하기 위한 매우 신뢰할 만하고 훌륭한 소재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북클럽은 ‘지적인 인맥’을 형성하기에도 좋다. 서로 대화를 하다 보면 상호 간에 신뢰를 쌓기에 적당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일의 영역, 혹은 사업적 영역에서 있어서의 교류도 나눌 수가 있게 된다.
북클럽은 책을 간절하게 읽고는 싶지만, 일상에서 자신을 강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효과적이다. 혼자만의 약속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어떻게라도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게 되고, 이렇게 해서 독서 습관이 몸에 익게 되면 책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읽고 토론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부분도 있다. 대체로 과거부터 사귀었던 친구들이라면 생각이나 행동방식이 거의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다른 의견을 듣기는 쉽지 않게 된다. 하지만 친구가 아닌 상태에서 함께 모인 사람들과 토론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시(詩)나 소설 등은 읽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서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문학 북클럽의 경우, 이러한 다양성을 접하기에는 최적의 모임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책을 함께 읽는 것에 대한 수요가 있다 보니 앱과 인터넷을 참여할 수 있는 독서모임 커뮤니티도 있다. ‘트레바리’라는 온라인 독서모임은 그 회원 수만 5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걸맞게 4인 이하가 특정한 책을 정해서 있고 서울의 강남, 안국 쪽에서 만나 서로 토론을 하게 된다. 또한, 이 모임에서는 책을 읽고 생각해봐야 할 구체적인 목표까지 정해준다. 예를 들어 경제학 서적을 읽을 경우에는 ‘자본주의는 무엇인가’, ‘예적금을 하면 왜 마이너스라고 하는가’, ‘미국과 중국은 왜 쌍심지를 켜고 싸우나’등의 토론 주제들을 미리 내주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도 더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고, 한번 토론을 하고 나면 자신의 머릿속에 잘 정리가 되어 성취감이 한층 더 높아진다.
이러한 독서모임은 향후 4차산업혁명의 흐름과 함께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 트렌드, 혁신을 따라가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이럴 때 책은 이러한 변화의 본질을 알려주는 가장 효율적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도 여전히 성인들의 독서량 자체는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책 읽는 사회’로 변화한다면, 지적인 대중들의 확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