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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부른 강제 은퇴 12만 명, ‘은퇴남편증후군’
코로나가 부른 강제 은퇴 12만 명, ‘은퇴남편증후군’
  • 백경화
  • 승인 2021.08.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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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월 기준, 은퇴한 직장인은 동년 대비 12만 명이 급증했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20218월 현재는 아직 통계상 잡히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인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코로나19 이후 25만 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은퇴자들이 양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은퇴한 사람은 다시 직장에 복귀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한 개인의 인생에서는 매우 치명적이고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이런 남성들에게 생기는 것이 바로 은퇴남편증후군이다. 외출을 꺼리고 관계를 단절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은퇴 후 쪼그라든 삶

코로나19로 인한 비자발적 실업, 혹은 은퇴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조기퇴직, 정리해고, 직장의 휴업과 폐업 등으로 인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직장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통계청에서 밝히고 있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 나이는 52.6세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무려 82세에 육박한다. 은퇴하고도 무려 30년이라는 긴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들이 갑작스럽게 퇴직하면서 겪게 되는 충격은 실로 타격이 크기 때문에 은퇴남편증후군(RHS: 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갑작스럽게 은퇴한 남성들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바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이다. 마치 사회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 같고,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무력감이 온몸을 지배하며, 과거에 일하면서 느꼈던 쾌활함은 온데 간데 찾을 수가 없다. 그러니 말수가 줄어들게 되고 종일 집에서 TV를 시청하는 일도 흔하다. 그나마 자녀들이 찾아오면 활기가 돌곤 하지만, 역시 삶에 바쁜 자녀들이 살뜰하게 아버지를 챙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은퇴 남성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쪼그라든 삶을 살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심각한 범죄를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화를 내거나 주먹을 휘두르면서 전혀 모르던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고령층의 범죄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2010월 발표된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노년층 범죄의 비중은 13% 정도이다. 이는 20105.9%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심지어 강력범죄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은퇴를 통해 이뤄진 고립과 우울이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추락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보다 고령화 사회를 먼저 겪었던 일본에서는 이런 문제를 체감하면서 하류노인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이들은 ‘3()’로 정의되는데, 수입이 없고, 저축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노인을 말한다. 이들이 겪을 수 있는 현실은 매우 비루하다. 생활비의 부족으로 하루 한 끼의 식사로 만족하는가 하면 질병에 걸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증상만 완화하는 약만 먹게 된다. 폭염에는 더운 집에서 건강을 위협받고 심지어 생활고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65세 이상의 빈곤율은 48.6%로 가장 높다. 노인 자살률도 1위라는 점에서 이들 은퇴 남편들이 앞으로 겪게 될 하류 노인의 삶은 매우 처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생활 간섭은 안 돼

부부가 함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함께 살아가는 아내는 더욱 괴로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은퇴한 남편은 처음 한두 달은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한다. ‘이제 남은 건 건강이라는 생각에 아침에는 산책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산에 가기도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향 친구도 만나고 동창들과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만나는 사람이 줄어들고 매일의 일상에서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으며, 그때부터 늘어나는 것이 바로 잔소리. 청소 상태며, 음식 타박을 하기 때문에 아내들은 점점 괴로워지고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게 된다. 특히 아내에게 있어서 집이라는 공간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수십 년간 남편이 밖에서 일했으니 당연히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주도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편이 은퇴한 후 집에서 간섭하게 되면 그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따라서 남편이 마치 점령군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러니 반발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더 이상 남편이 돈을 벌지 못하니 그나마 있었던 존경심이 사라지고 남편 대우마저 하지 않게 된다. 한번 싸우게 되면 더욱 격렬하게 충돌하고 심지어 일주일, 한 달 동안 서로에게 말도 걸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상황에서 남편은 더욱 깊은 우울감과 외로움을 느끼지만, 밖으로 말을 꺼내기도 힘든 상태가 된다. 이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면 결국 황혼 이혼을 하게 되며 남성은 홀로 남아 하류 노인이 되고 만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 준비가 제1순위이며, 2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당장 통장에 돈이 별로 없는 사람과 그래도 최소한이나마 마음이 든든한 정도의 돈을 가진 사람은 은퇴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다. 돈이 없으면 당장 자신감이 상실되고 도전을 했을 때의 실패에 더 민감해지게 된다. 반면 어느 정도 돈이 있다면 그래도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한 열정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준비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취미와 일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눈높이를 철저하게 낮춰서 재취업을 할 수도 있고, 그간 하지 못했던 취미를 시작해 돈이 되는 일도 할 수 있다. 많든 적든 경제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다.

두 번째는 배우자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다. 아무래도 은퇴를 하게 되면 배우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심리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마지막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 감정표현을 하는 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에게 꼭 필요한 남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함으로써 은퇴 이후에도 감정적인 분리 없이 한 가족으로 살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더구나 이렇게 배우자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자녀들도 존경심을 유지하면서 교류와 왕래를 할 수 있다. 은퇴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히고 있다고 하면, 자녀들도 결코 아버지에게 호의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소한 일이라도 서로 의논하고 협력하면서 생활할 필요가 있다. 다만 배우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사생활 침해까지 해서는 안 된다. 부부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개별적인 인격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야만 관계가 더 원활해질 수가 있다. 은퇴 이후의 삶은 결국 얼마나 준비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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