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 그것이 결국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 그것이 결국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
  • 정하연
  • 승인 2021.11.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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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Project, 개천에서 용난 CEO] 건설기계평가원㈜ 김희승 원장

대한민국은 이제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중에 10위 권에 드는 경제 대국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는 문화강국이자 소프트 파워를 가진 나라로도 평가받는다. 하지만 문제는 밝음 뒤에 있는 어두움이다. OECD 국가 중 1위의 자살률, 낮은 출산율, 그리고 극심한 빈부격차는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의 새로운 도전과 기성세대의 배려가 있어야만 한다. 본지에서는 어렵고 힘든 시절을 이겨내고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를 쓴 기업인들을 찾아간다. 그들의 과거의 불운, 현재의 노력, 그리고 미래의 꿈이 청년 세대와 우리 사회에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이 되길 기대한다.

 

건설기계평가원㈜ 김희승 원장(사진=종합시사매거진 DB)

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의 설득으로 어쩔 수 없이 고아원으로 가야 했던 소년이 있었다. 미국인 그 누구라도 자신을 양자로 들여주기 꿈꾸었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신문팔이, 구두닦이를 하며 가난이 지긋지긋한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공부는 당연히 하지 못해 겨우 초등학교까지만 졸업했을 뿐이다. 마치 한 시대극의 불우한 주인공 같은 삶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소년도 나이가 들어 60세를 넘어섰다.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을 취득했고 어느덧 공학박사까지 취득했으며 이제까지 딴 자격증만 30여 개가 넘는다. 이제는 40여 명이 근무하는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까지 하고 있다. 건설기계평가원의 김희승 원장.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놀라운 성공 스토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한민국 건설 현장의 안전지켜

건설기계평가원은 지난 2016년에 창립되어 타워 크레인등의 건설기계 안전 점검.비파괴 및 진단을 하는 회사이다. 타워 크레인은 한번 문제가 생기면 거의 인명 사고로 연결되고. 또한 높은 곳에서 작업을 하는 만큼, 한번 무너져 내리게 되면 중대사고로 직결된다. 지난 2017년 한해에만 20여 명이 타워 크레인 사고로 사망했을 정도이다. 김희승 원장은 바로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창업을 시도했다. 22년간 국가공인검사기관인 대한건설기계안전관리원에서 근무한 그가 퇴직 후 만든 회사이다.

타워 크레인은 굉장히 위험한 건설기계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기둥처럼 세우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도 철저하게 안전 수칙을 세우면서 일을 해야 사고가 없습니다. 하지만 건설 현장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변수가 많아 안전 수칙이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회사는 바로 이러한 타워 크레인을 비롯해 건설기계가 현장에서 안전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장비를 설치하고 해체할 때 이것을 현장에서 관리감독 하고 조언하며 문제를 바로 잡아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건설기계평가원의 김 원장은 공학박사이자 2017년에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선정되었으며. 건설안전기술사이자 건설기계 기능장이기도 하다. 회사의 고문은 전() GS건설 상무 출신인 하행봉님이 맡고 있다. 그 역시 공학박사와, 건설안전기술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희승 원장을 비롯한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우리 사회의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이 지켜지고 있다. 건설기계평가원에서 최근의 수행실적만 해도 대림산업, 효성중공업, 한진중공업, 서한이다음,원건설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많다. 이렇게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김희승 원장의 과거에는 안타깝지만,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가 숨어있다.

 

KAIST leader ceremony(사진=건설기계평가원 제공)

나이 50살에 공대 박사학위까지 취득

김희승 원장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공부하다 내려와 전남 화순에 정착했다. 아버지는 공부도 많이 하여 시골 면사무소 부면장까지 한 당시의 엘리트였다. 그가 태어난 것은 1955, 7남매의 4남이었다. 6.25전쟁 직후라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대였지만, 그래도 김 원장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였다. 문제는 6.25상처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 가계가 어려워져 김 원장은 고아원으로 들어가게 됐고, 그곳에서 미국인 부모가 양자로 들이기를 애타게 소원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기 시작하자 고아원에도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와 대전역 앞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해서 신문팔이와 구두닦이 등 닥치는 대로 궂은 일을 해야했다. 그렇게 점점 나이가 들어 어느덧 군대에 입대해야 되는 시기가 되었다. 구두닦이를 하면서 만났던 해병대원이 멋지게 보여 어떻게 하면 입대할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거기다가 월남전에 참여하고 별도의 전투 수당이 있어서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4~5배의 수당을 받는다고 했다. 굶주리던 어린 시절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는 꿈같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군입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쟁률이 무려 15:1이었고 시험에 3번이나 떨어졌고 19761월에 해병대 303기로 입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월남에 갈 기회도 사라지고 말았다. 월남전 자체가 종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김 원장의 인생을 바꾸는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군대 후반기 교육을 육군 공병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중장비를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김 원장은 또 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군대시절 장군의 손녀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살짝 귀뜸한다.

그때 배운 중장비로 제가 이후로 40여 년을 먹고 살고 있습니다. 운전하고 정비하면서 점점 중장비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이후 사우디 건설 현장에 가는 것은 물론이고 알래스카에도 다녀왔습니다. 물론 지금 건설기계평가원도 바로 군대 시절에 배운 중장비가 그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고 당시에는 전망이 좋았던 직종 중 하나였죠.”

군에 입대하면서 그는 겨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단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할 수 있었고 군에서 배운 기술로 사회에서 그래도 인정을 받는 기술자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후에 현대건설에 입사해 전 세계를 누비면서 국내에 있는 것보다 2~3배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계속해서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현장에서 최고봉을 의미하는 기능장 자격증은 물론이고 중장비정비사 크레인, 구레이더, 굴착기,등 운전과 훈련교사 자격증을 땄고, 무려 9번의 도전 끝에 건설안전기술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그리고 배우지 못한 설움을 채우기 위해 독학과 야학으로 검정고시를 공부했고, 끝내 학사 및 석사학위를 충남대학교에서, 그리고 50줄에 들어서도 학업을 계속하여 호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후에도 그의 학습 의지는 계속되어 카이스트 혁신리더 단기과정을 수료할때는 카이스트 총장으로부터 혁신리더상까지 받았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장면중 하나는 낯설고 육중한 고아원 철문 앞에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골목의 뒤쪽에서 애타게 숨어지켜 보면서 얼른 들어가라고 손짓하시던 어머니의 그때 심정을 지금은 백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온 것이 사실이다.

김 원장은 최근 제10회 대평 남종현 발명문화대상에서 발명문화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김 원장이 출품한 작품의 테마는 건설기계의 심장인 디젤엔진의 흡배기 장치중에서 배기가스의 성분중의 하나인 매연의 입자상 물질(pm)을 포집 분석 연구한 것이 심사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특허와 석, 박사 논문 그리고 학회지에 꾸준하게 논문을 발표하면서 건설기계 안전. 교육분야에서 46년을 종사하였다는 것이 수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건설기계평가원㈜ 김희승 원장(사진=종합시사매거진 DB)<br>
건설기계평가원㈜ 김희승 원장(사진=종합시사매거진 DB)

스스로 역경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정신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청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살아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런 간절함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호의를 베풀 사람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고, 생존의 원리를 깨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과 그때의 상황이 많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의 이러한 풍요로움 때문에 젊은이들의 도전정신, 생존의 간절한 욕구는 더 약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살릴 수 없다면, 아무도 자신을 살려줄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 더 많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청년들이 좀 더 강인한 자신감으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김희승 원장의 삶은 어쩌면 늘 가난과 패배, 시련의 연속이었다. 고아원에서 그리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해병대 시절과 사우디의 모래사막과 택시 운전 사고로 합의를 안 했다 하여 전두환정권 시절에 삼청교육까지 받은 그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해병대 낙방, 사우디취업시험 3번 낙방, 기술사 시험은 장장 9번이나 도전했다. 떨어지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무섭지 않은데 자신을 달랠 용기가 없어 때로는 혼자 울기도 했다는 그가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고 박사학위에 도전한 것은 그의 나이 50세였다. 충남대 대학원시절 류정인 지도교수는 늙은 학생이라고 놀리기도 하면서 늘 용기와 희망을 주신 자상하신 분으로 잊지 못한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렇게 길고 긴 도전의 결과는 그를 행복과 삶의 안정이란 낙원으로 안내했다.

인생은 마라톤경기죠.” 김 원장은 마라톤 마니아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 새벽에는 대전계족산을 2시간정도 달린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50회 정도 완주했다 42.195km를 뛰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10km 전후의 하이런너 구간이 있고 30km 전후의 악마의 구간이 있는 것처럼 인생살이가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어렵고 힘든 구간이 있지만 반드시 결승점은 오더라는 것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의미이다

정말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요.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고 좋은 공기도 맑은 햇빛도 이것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모두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 이보다 행복한 생활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어려운 시기를 담담하게 보낸 나름의 노력과 끈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모이고 모인 결과 그 열매를 맺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스스로 받아들이면서 이겨나가겠다는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원장은 3-4년 전부터 욕심을 비우는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 처음 회사를 같이 창업했던 젊은청년 신호영님에게 대표 자리를 위임해주고 뒤에서 둥지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은 꿈과 희망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 꿈과 희망을 포기한 사람이 많은 시대일지도 모른다. 김희승 원장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에는 남부럽지 않은 성공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꿈과 열정이 있으면 늙지 않는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지금도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꿈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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