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가 자문 중인 재건축조합 조합장이 이런 질문을 했다, 조합의 모든 업무는 이사회의 결의를 받아 집행해야 하는 것이냐고. 조합에서 누군가 "모든 업무는 이사회 결의를 받아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고 하는데, 조합장은 매번 사소한 일까지 이사회를 열어야 하느냐고 답답해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재개발 또는 재건축 조합의 정관을 보면 이사회의 사무로 '조합의 통상업무의 집행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나 서울시가 제공하는 표준정관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데, 대부분 조합이 이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관의 문언만 보면 조합의 모든 업무는 이사회를 거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편물 발송, 사무용품 구매, 직원 근태관리 같은 일상적인 업무까지 매번 이사회를 열어 처리하는 조합은 없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조합장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이고, 어디서부터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 업무일까?
아쉽게도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령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필자는 아직까지 조합 정관이나 그 하위 규범인 행정업무규정에서 이에 대해 규정을 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절차가 문제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조합의 중요한 의사는 총회나 대의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사회 의결만이 문제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거나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정관에서 명시적으로 이사회 의결사항으로 정한 경우다. 총회나 대의원회 소집, 예산집행, 상정안건 심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조합원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다. 용역계약 체결, 소송 제기, 중요 자산 처분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 조합 운영의 중요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이다.
반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상 업무는 조합장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봐야 하겠다. 정기적인 공과금 납부, 소모품 구매, 통상적인 우편물 발송, 직원 복무관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긴급한 상황에서 조합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응급조치도 조합장이 선(先) 조치 후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조합들은 이러한 기준을 구체화하여 정관이나 행정업무규정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만원 이하의 물품구매" "정기반복적인 관리비 지출" "법정기한이 있는 신고·보고" 등은 조합장 전결사항으로, "○○만원 이상의 계약" "조합원 부담이 되는 새로운 계약" "소송 제기 및 대응" 등은 이사회 의결사항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조합 운영의 효율성과 견제·균형이라는 두 가치를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것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면 업무가 마비되고, 모든 것을 조합장이 결정하면 독단의 우려가 있다. 각 조합의 규모와 특성에 맞는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조합 운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