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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1등 보건기업의 꿈, 유한양행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1등 보건기업의 꿈, 유한양행
  • 정희
  • 승인 2012.04.13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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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윤의 사회환원 적극실천 행복한 미래의 삶의 약속

 

신용의 상징 버들표 유한양행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며,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 기업의 이익은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정직하게 납세하며,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한다.”


유한양행의 고(故) 유일한 회장이 과거 전 직원들에게 액면가 10%로 주식을 나눠주며 읽어 내려간 짤막한 문건의 글은 현재 유한양행그룹(대표 김윤섭)의 경영철학을 이루는 토대이다.

 

제약산업을 통한 건강입국의 신념으로 세운 기업

 

(주)유한양행은 1926년 12월 서울 종로2가 덕원빌딩에 처음 세워졌다. 창업자는 유일한 박사. 1925년 미국유학을 마치고 고국에서 ‘웅지’를 펴기로 결심한 유일한 박사는 평소 존경해왔던 애국자 서재필 박사를 찾아갔다. 유일한 박사는 당시 일제하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 제약산업을 통한 건강입국의 신념을 피력했다. 서재필 박사는 “한국인임을 잊지 마시오”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기념의 정표로서 목각화 한 장을 내 주었다. 서재필 박사의 영애가 손수 조각한 목각의 그림은, 잎사귀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였다. 유일한 박사의 柳(버드나무)에서 착상된 이 목각화에는, 고국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그루의 큰 버드나무처럼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끈질기게, 무성하게” 대성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 목각의 버드나무 그림은 유일한 박사가 1926년 유한을 창립하면서 초창기 유한의 마크로 사용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분적 변형은 있었으나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싱싱하고 푸르게 성장하였으며, 항상 국민보건 향상에 앞장서온 모범기업으로서의 뜻’을 가지고, 보다 넓은 세계로 도약하는 유한의 발전과 함께하고 있다.

 

처음 만들었을 때의 미국식 약방형태였던 유한양행(柳韓洋行)은 자신의 이름을 딴 유한(柳韓)과 세계로 통한다는 뜻의 양행(洋行)을 합친 말이다. 유일한 박사는 일제치하에서 ‘건강한 국민만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창립해 제약산업을 통한 ‘건강입국’의 의지를 다졌다. “내가 모은 재산은 모두 여러 사람을 위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

1971년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타계했지만 그의 사회공헌 정신은 여전히 유한양행을 이끄는 힘이다. 유일한 박사의 유언처럼 유한은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업으로서 오늘도 힘차게 정진하고 있다.

 

다수의 신약 개발 성공

 

유한양행은 세워진 첫 해 염색약, 위생용품, 결핵약, 진통소염제(안티플라민) 등을 미국에서 수입해 팔았고 이듬해부터 화장품, 농기구, 염료 등도 팔기 시작했다. 1936년 유한양행은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초대 사장에 유일한 박사가 취임했다. 이 해 경기 부천시 소사면에 소사공장을 세웠다. 1939년 유한양행은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했다. 100% 지분을 갖고 있었던 유 박사는 주식의 52%를 사원들에게 넘겼다. 이후 유한양행은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일궈갔다. 1941년 세워진 수출을 전담하던 유한무역회사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조업이 중단됐다가 1953년 본사 사옥을 다시 짓고 사업을 재개했다. 1957년 미국 제약회사인 사이나미드와 기술 제휴 협약을 맺었다. 이 해 유한양행은 국내 최초의 항생물질 제품을 만들었다. 1962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미국 맥스팩토와 제휴해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70년 미국의 킴벌리클라크와 합작해 지금의 유한킴벌리를 세웠다. 유한킴벌리는 이듬해인 1971년 국내 최초의 미용티슈인 크리넥스를 출시했다.

 

유한양행은 의약외품과 각종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동물약품 등 다양한 제품생산을 통해 의료와 건강의 중추적 기업으로서 성장해왔다. 2008년 신약 위궤양치료제인 레바넥스는 성공적인 중국시장 진출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중국 지준(Shenzhen Zhijun)사와 신약 위궤양치료제‘레바넥스’의 중국내 제조ㆍ판매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 제공 및 원료공급 관련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350만 달러의 기술사용료를 받았으며 이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중국내 제품 출시 시점까지 단계적으로 유입되며, 계약기간은 중국내 허가등록일로부터 10년으로 10년 후에는 2년씩 자동연장된다. 지준사는 매출액 규모가 연간 4조원에 달하는 중국 1위 제약사이다.

 

유한양행은 지준사의 입지 등을 감안해 출시 후 3년 차에 연간 4천만 달러(총매출액의 4% 비중)의 레바넥스 원료 수출이 예상되는 성과다. 유한양행의 계약성공은 유한양행의 독자기술로 개발한 레바넥스가 위궤양제제의 성장잠재력이 매우 큰 중국내 최대 업체에 기술수출되었다는 점에서 기술력을 입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미주, 유럽, 인도, 동남아 등지의 다국적기업 및 현지 기업과 진행 중인 레바넥스의 기술수출 계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각종 항생제, 항암제, C형간염치료제, 관절염치료제, 골다공증치료제 등 유망한 다수의 신물질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최첨단 연구시설을 갖춘 중앙연구소와 생산설비를 갖춘 오창종합공장은 유한양행의 미래 발전을 도모하는 심장부다.

 

사회나눔의 공헌에 힘써…

 

‘건전한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기업이윤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야 한다.’는 이념으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선도적으로 실천해온 유한양행은 교육장학사업 및 사회원조사업을 보다 항구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되겠다는 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1970년 개인주식 8만3천여주를 기탁하여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을 발족시켰으며, 이듬해 사후 유언장 공개를 통해 전재산을 이 기금에 출연했다. 유일한 박사가 유언장을 통해 모든 소유주식을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에 남김으로써 유한양행의 기업이윤은 사회공익사업을 위해 쓰여 지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유일한 박사는 개인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시로 장학금을 주는 것은 물론 해외유학생에게 여비를 부담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은 1976년 장학 사업 등 사회사업을 위한 공익 재단법인 ‘유한재단’과 우수 기술인재 양성을 위한 학교법인 ‘유한학원’으로 분리되어 오늘날까지 활발한 사회공익사업을 펼치며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유한양행의 주식은 유한재단 18%, 유한학원 8%, 기타공익법인이 16% 가량을 소유하고 있으며, 유한양행은 지속적인 고배당 정책을 통해 기업이윤이 사회공익활동에 쓰이도록 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현재도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교육, 장학사업에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1991년 유일한 박사의 외동딸 유재라 여사도 생전에 틈틈이 모은 전재산(시가 200억원 상당)을 남김없이 유한재단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딸인 유재라 여사도 자본주의 윤리에 철저했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데 평생 온힘을 쏟았으며, 세상을 떠나며 완성한 것이다. 사회나눔과 공헌의 경영철학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대표 문국현)는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의 주요 모델이 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비롯,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한 나눔 경영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이야 환경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처음 유한킴벌리가 이 캠페인을 시작한 1984년 무렵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2,000 달러 수준의 개발도상국수준에서 환경사업이 매출과 전혀 무관한 무모한 투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이었다. 지난 1971년 크리넥스 티슈로 첫 선보인 이래 뽀삐, 아기 기저귀 하기스, 코텍스 화이트, 웨트 티슈 등 다양한 생필품으로 깨끗한 생활을 선도하고 아낌없는 사회공헌으로 세상을 푸르게 만든 유한킴벌리의 첫 시작이었다.

 

존경받는 유한양행의 표류하는 오너십

 

이처럼 유한의 경영철학을 함께 공유하는 가족회사들의 책임있는 사회적 역할을 바탕으로 언제나 ‘존경받는 기업’ 1위로 꼽혀온 유한양행(토론, 차트, 입체분석, 관심등록)이 새로운 의기의 국면을 맞고 있다. 계속되는 오너십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열린 주총에서는 험한 분위기가 연출되기까지 했다. 예년 같으면 30분이면 끝날 주총이 그 4배인 두 시간이나 걸렸다는 것도 갈등이 증폭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조카가 경영진의 실적 부진을 질타하면서 양방간에 고성도 오갔다. 유한양행의 사장·회장·재단 이사장까지 지낸 80대 고문이 격분해 맞받아친 것이다. 유한양행의 투명한 기업의 윤리실천 평가와는 달리 영업이익은 지난해 492억 원 수준으로 반토막났다. 17만 원대의 주가가 11만 원대로 추락한 것이 직접적인 타격을 가져왔다. 업계 순위도 2위에서 4위로 밀려났다. 상장사의 주총에서 실적·주가 부진으로 주주와 경영진이 마찰을 빚는 것은 예사롭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제약업계의 상황을 짐작해보면 유한양행 경영진의 입장도 이해될 만하다. 지난해 비교적 선방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유·경영이 분리, 책임경영 부재

 

하지만 유한양행은 소유·경영이 분리된 모델 기업이면서, 책임경영 부재라는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여서 주목해야한다. 창업주의 가족은 경영에서 손을 뗐지만 사실상 주인이 없는 지배구조가 장기화 되다보니 경영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전형적인 주인-대리인의 함정으로 볼 수 있다. 유한양행은 국내 최초의 종업원지주제 도입(1936년), 제약업계 첫 기업공개(1962년), 국내 첫 스톡옵션 도입(1993년), 제약업계 첫 정년 연장(2010년) 등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경영 투명성에선 자타가 공인할 만하다. 그러나 성장성이나 사업의 본질이라는 면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한경비즈니가 실시한 제약담당 애널리스트 15명의 설문 결과에서도 유한양행은 윤리경영만 1위였을 뿐, 혁신 글로벌화 마케팅 등 다른 5개 분야에선 단 하나도 3위 안에 들지 못했다는 점도 심각함을 보여준다.

 

기업 지배구조는 깨끗하고 정직한 윤리경영이 밑바탕이 되야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강력한 오너십이라는 것도 양보할 수 없는 기업의 경쟁력이다. 오너십의 부재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은 최근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보여줬다. 미국의 엔론 월드컴 등의 회계부정은 기업을 사유물처럼 여긴 전문경영인의 딜레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한 일본 기업들도 신속하고 결단성 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유한양행은 사회적 공헌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충분히 존경의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기업의 이념과 도덕적 윤리의 사회적 공헌에 의한 존경심만으로는 건실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이끌기에는 다소 뒷심부족이라는 질타를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의 존립을 위해 새로운 경영혁신을 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80년 전통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한양행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경쟁력을 갖춘 1등 보건기업의 꿈을 향해 비상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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