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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외길 걸어온 거장이 말하는 작품 세계
50년 외길 걸어온 거장이 말하는 작품 세계
  • 송지선
  • 승인 2017.09.01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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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붓놀림으로 승화된 예술인생

 

 

김수영 서양화가

 

 

약 50년 전 우리는 먹고 살기 팍팍한 시절을 보냈지만 마음 속 감성은 풍부했다. 한 젊은 청년은 당시 금기시됐던 사회 풍토에 맞서 금강산을 그린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한평생 그가 갈망하는 예술 세계는 변함없지만 사회는 변심했다. 곳간이 넉넉하다고 마음까지 풍족할 수 있으랴. 김수영 서양화가의 예술 인생 50년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의 풍미가 담겨 있고 따스한 감성이 녹아 있고 냉철한 반성이 드리워 있다. 아직도 뜨거운 심장의 소유자인 김 작가를 만났다.  


 

  역사의 향기 100호 162x130.3cm 혼합재료

 

 

정주영 명예회장이 선택한 작가

1972년 어느 날. 지금이라면 큰 센세이션이 없겠지만 젊은 혈기가 들끓은 김수영 서양화가의 파격적인 행보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금강산을 소재로 ‘제1회 개인전’을 열면서 단숨에 예술 작가 대열에 올랐다. 북한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되었던 시절에 금강산을 예술 소재로 삼은 대범함이 모든 이가 놀랐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김 작가의 작품을 감상했고 정부 측 관계자도 몰래 염탐할 정도로 화제였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를 쥐고 흔들었던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직접 찾아와 ‘금강산전경’을 구입할 정도였으니. 북한이 고향인 故 정 회장은 김 작가의 예술적 능력을 익히 알아봤다.  

 

“여러 신문에 보도됐고 제 그림을 보면서 기도하는 관람객도 봤습니다. 군대에 가기 전 개최한 전시회였는데 시작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금강산을 안 그리면 한국 작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정치적 분위기와 압박 때문에 북한에 관한 소재를 잘 사용하지 않았죠. 이 전시회를 계기로 진정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군대 제대 후 김 작가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년 동덕미술관의 현대창작회 공모전 특선, 1978년 디자인포장센터의 신미술대전 입선에 이어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1999년 전국 현대미술 공모전 대상 수상 등 각종 공모전에서 30여회 수상 기록을 남겼고 각종 표창 및 감사장을 50여회 받았으며 24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  

 

김 작가는 “한국미술계에서 50년 동안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훌륭한 스승을 둔 것도 아니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라며 “신진작가의 전시회는 빠짐없이 관람해 연구했고 지금도 페이스북을 통해 외국 작가의 화풍을 조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몸 파는 거 빼고는 다 한다”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이 읽힌다.  

 

 

 

내 어머니의 전설 15호 65.1x53cm 아크릴릭 

 

 

욕망의 계절 100호 162x130.3cm 혼합재료

예술가에게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한결같은 마음

60세가 되던 해 김 작가는 인사동을 상징하는 갤러리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회갑 기념 전시회였다. 나이를 더 먹으면 열정이 식을 것 같아 마지막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아내를 설득했다. ‘이번 전시회가 내 인생의 커튼콜이다’라는 말을 누누이 한 기억이 있다”라며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 전 일이다. 올해 압구정동 윤당 갤러리에서 ‘인생 70년 예술 50년 전’ 개인전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10년 전 개최한 개인전에서는 고향 선배인 현 이시종 충북지사 등 쟁쟁한 인맥이 총출동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인사아트센터 관계자가 당황할 정도였다. 그중에서 그는 한 관람객이 떠오른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지 못했던 한 관객은 김 작가의 그림 앞에서 “오늘의 백미다”라며 탄성을 자아냈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액을 지불하며 작품을 사갔다.  


올해 70세를 맞이해 열린 개인전도 큰 관심을 받았다. 나이가 장벽이 되지 않은 이유.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일한 70대 화가로 인정받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소재와 화풍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방면에서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여 왔다.

“그림은 40여 명이 모여 하나의 음을 내는 오케스트라나 마찬가지입니다. 60개의 칼라로 360개의 칼라를 그리면서 명암을 주고 디테일 요소를 살려 3만6천개의 칼라를 살립니다. 하나의 작품을 그리는 것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분의 눈높이에 맞게 3만6천개의 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뉴욕 아트 엑스포’는 누구나 꿈꾸는 무대다. 지난 2010년 그는 과감하게 뉴욕 아트 엑스포에 참가해 미국 언론의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남근을 그린 작품은 전시되자마자 이목을 끌었다. ‘유교가 뿌리 깊은 대한민국 작가가 남근을 그렸다’는 사실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지난 2013년 코트라가 개최한 ‘한류미술공모전’에서도 그는 젊고 생기가 넘치는 작가들 사이에서 당당히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김 작가는 20~30대 작가들의 전유물로 알려진 그래피티 아트에 도전해 뛰어난 예술성을 발휘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허영만 만화가는 “젊은 작가가 그린 그림인 줄 알았다”라며 그가 발현한 예술적 세련미에 혀를 내둘렀다. 정해진 모티브나 소재의 제한 없이 무엇이든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70세가 된 그를 ‘여전히 전성기’로 이끌고 있다.

 

 

 복숭아 꽃이 필 때면 40호 100x80.3cm 캔버스에 유채 

 

예술만 바라보는 자신감과 용기

그는 “모든 장르를 다 하고 싶다. 몸은 늙었지만 열정은 젊은 세대에 견주어봐도 부족함이 없다”라고 고백한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영감과 감성을 준다.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내가 이 세상에서 얼쩡거리며 오래 살았지만 결국 죽음이 닥칠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마지막에 ‘나는 이렇게 화려하게 갈 줄 알았다’라고 쓰고 싶군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등록금 걱정 때문에 교대에 진학했습니다. 부유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습니다. 후배들에게 ‘순수로 돌아가는 감성이 최고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비싼 물품을 사야 된다는 강박관념은 버리세요. 주변의 모든 물건이 소재입니다. 정서가 메마른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보여주고 평가를 받으세요. 멋진 전시관이 아니어도 되잖습니까. 열정을 진짜 예술가를 만듭니다.”

 

김 작가는 우륵이 집집마다 울리는 떡방아 소리에 근심하는 부인에게 거문고를 연주한 일화를 되새기라고 조언한다. “열정을 가지고 한곳만 바라보며 달리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예술을 포기한 수많은 작가들에게 뼈저린 교훈을 준다. ‘김수영’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알기에 그의 실력과 충고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환경이 주는 시련 속에서도 예술을 추구한 지난 시간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예술은 작가에게 기쁨을 주고 관람객에게 희망을 선물한다. 그와 같은 예술가가 넘친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이 찬란하게 꽃필 것이다. 그는 막막한 예술 세계의 등불이 되어 우리나라의 미술계에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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