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3:53 (목)
디자인 모올 조영길 대표
디자인 모올 조영길 대표
  • 편집부
  • 승인 2017.11.22 16: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영길 대표는 어렸을 적의 유난한 관심이 전공으로 이어지고 40여 년간이나 전공을 살려 일한 보람과 사회적 결과를 얻은 행복한 사람이다.
“어릴 때 외국 잡지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 실린 물건들이 모두 신기해 보였어요.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동네에 TV나 냉장고가 있는 집이 한 가구 있을까 말까한 때였어요.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고 나중에 성장하면 이런 일을 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그럼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 궁리해보니 상업디자인이 보이더군요.”
유학시절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디자인은 일상의 사소한 것을 주목하는 것에서 시작

제품 디자인은 기업의 운명이 달린 일, 필사적인 마음으로 임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용을 그릴 때 마지막에 눈을 그려 넣는다는 뜻으로, 사물이나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최후의 방점을 말한다. 현대에서 비유를 찾는다면 이런 최후의 화룡점정을 ‘디자인’이 하고 있지 않을까. 첨단기술의 진보와 비상이 화려하지만 이 기술은 디자인을 제대로 만났을 때야 비로소 소비자로부터 더욱 열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 한정해 보더라도, 소비자들은 실용성 너머의 심미적 시각을 매우 중시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조건감각적인 디자인을 선호하진 않는다. 사물의 본질과 유리된 디자인은 의미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좋은 디자인은 사물에 내재한 본래의 기능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모두 포용해 가장 적절한 용기에 담아내는 최고의 미적 활동일 것이다. ‘(주)디자인 모올’의 조영길 대표는 디자인의 이런 요구를 오랫동안 구현해 왔다. 그의 족적을 보110자면 2016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에서 은탑 훈장이 수훈된 것은 너무도 맞춤한 일이다.

 

 

캔테이너를 디자인하는 사람

‘dmco'라는 오프라인 상점이 있다. 벽시계, 칼도마, 냄비받침대 등 생활 소품들을 취급한다. 디자인 감성에 문외한 일지라도 단번에 범상치 않은 모양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북유럽 스타일의 주방도구인가 싶어서 이것 앞에서 잠깐 갸우뚱하게 되는데, 마치‘파리채‘와 닮았다. 설마 잘나가는 디자인회사에서 파리채를?... 하고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물건은 정말‘파리채‘다.

또한 캔테이너라고하는 재미있는 상품이 눈에들어온다.

Can!Can! 무엇이든 될수 있는 Cantainer! 정해진 용도는 없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의자가, 피크닉 가방이, 테이블이, 다양한 용도의 수납함이 될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이 캔테이너야 말로 (주)디자인 모올 조영길 대표의 디자인 가치관이 응집돼 있는 물체다.

“일상생활, 우리 주변부의 사소한 것들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예민하게 주의해서 봅니다.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찾아냅니다.

이 사소함의 시작에서 조영길 대표는 세계적인 제품을 성공시킨 거대하고 콤팩트한 발상을 이끌어 냈다. ‘디자인 모올’은 디자인업체로는 유일하게 지난 2010년 백만 불 수출의 탑을 달성했다. 중국 스마트폰 전문업체 위롱(Yulong) 제품을 디자인해 준 결과이다. 기업 CEO를 소비층으로 한 고급 스마트폰 이‘쿨패드’는 위롱의 브랜드가치를 높여준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더 있다. 중국 최대이자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Huawei)에 디자인해 준 ‘데이터 카드 모뎀’은 세계적인 디자인 상인‘레드 닷 어워드’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상을 수상했다. 유럽시장을 겨냥한 중국제품이었지만 디자인은 한국의 ‘디자인 모올’의 이름으로 받았다.

중국 디자인 시장은 현재 조영길 대표의 주요 고객이다. 10여 년 전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서의 시장 잠재성을 감지하고 도전하는 사업가들은 많았지만, 디자인 분야에서는 그가 최초의 탐색자였다.

 

 

 

 

국내 주요 제품 가전제품 디자인

조영길 대표는 어렸을 적의 유난한 관심이 전공으로 이어지고 40여 년간이나 전공을 살려 일한 보람과 사회적 결과를 얻은 행복한 사람이다.

“어릴 때 외국 잡지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 실린 물건들이 모두 신기해 보였어요.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라 동네에 TV나 냉장고가 있는 집이 한 가구 있을까 말까한 때였어요.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고 나중에 성장하면 이런 일을 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그럼 무슨 공부를 해야 하나 궁리해보니 상업디자인이 보이더군요.”

유학시절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국내에서 흑백TV만 보다가 컬러TV를 처음 보았고, 도로 위의 자동차들도 같은 디자인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경험은 조영길 대표가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디자인을 위한 사회적 관찰 방법의 토대가 되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국내 시장에서 시작한다. 조영길 대표는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뉴욕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하다 1990년부터는 LG디자인연구소 제품 디자이너가 됐다. 1994년에 독립해 (주)디자인 모올을 설립했다.

이후 국내에서 생산되는 TV,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과 휴대푠 등 IT제품에 걸쳐 그의 손을 거친 디자인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작은 벤처기업에서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히트 디자인을 산출했다. 초창기 LG싸이언, 위니아 딤채, 쿠첸 밥솥 등 천 여개의 상품 프로젝트들이 그의 디자인을 거쳐 갔다.

“우리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제품들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있다는 책임감으로 디자인을 합니다. 냉장고 하나를 개발하려면 상상할 수 없는 자금이 투입돼요. 기술, 사용 편리성, 미적 감각 등등 많을 것을 고려해야 하는 비용이지요. 실패할 경우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게 돼요. 개발에 매달린 사람들과 딸린 식구들까지 감안하면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는 일입니다.”

조영길 대표는 ‘목숨을 걸고 한다’는 표현을 쓴다. 그냥 저절로 행운처럼 오는 성공은 없다는 것을 그에게서 다시 확인한다. 그런 탓에 그의 디자인은 실패한 것이 없다. 그동안 자신의 디자인을 사용한 작은 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해가는 흐뭇한 모습도 보았다.

 

 

 

 

중국에 최초로 한국의 디자인센터 만들어

2002년 새로운 길을 모색하러 중국에 갔을 때 조영길 대표는 용트림하기 시작하는 중국의 모습을 감지했다. 여기가 ‘우리 시장’이라는 직감이 왔다고 한다.

“지금은 휴대폰 세계 2위의 기업이지만 2002년에 만난 화웨이는 휴대폰에 관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습니다. 기술도 그렇고 디자인은 물론이었지요. 자기네가 휴대폰 사업을 하고 싶다고 제안해 오더군요. 2004년부터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중국 진출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2005년에는 유롱과 일을 시작했다. 화웨이와 유롱 두 회사 모두 10년 넘게 조영길 대표와 제품 디자인을 함께 하고 있다. 이 기간은 조영길 대표가 한국디자인협회장을 하고 있던 시기와도 맞물려 2007년에는 중국에 최초로 디자인세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회사 브랜드 가치를 한껏 높여준 위롱과의 작업 때 조영길 대표는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한 외뢰 기업을 만나서 보람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다.

“완전한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5년이 걸린다고 말했어요. 처음엔 난색을 표하더군요. 그런데 중국 소비자의 취향과 생활패턴 등을 면밀히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득하니 수긍하더군요. 디자인의 가치를 아는 기업이었습니다.”

조영길 대표는 중국인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정이 나면 그 다음부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로 일처리를 한다고 한다. 중국의 광범위한 영토 덕으로 지역문화나 취향 증 다양한 소비층이 형성돼 있어 중국을 겨냥해서 성공하려면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경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자인은 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영길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아이디어의 반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품 하나를 사용할 때도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본다.

“디자인은 멋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 아쉬운 것을 발견해 내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래야만 하나, 이러면 안될까 궁리하다보면 답이 나오지요. 흔히 장인정신을 변하지 않는 고집으로 이해하는데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며 변해야 합니다.”

조영길 대표가 디자인한 파리채와 휴대폰의 간극은 꽤 넓다. 그 가운데 어딘가의 그의 궁극적인 또 하나의 디자인 목표가 있다.

“IT나 가전제품, 자동차는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하지만 일상 소비재들의 디자인 수준은 꼴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낙후된 이 부분을 끌어 올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삽을 보세요. 우리나라는 모양이 딱 한 가지입니다. 농사, 군대, 건설현장 모두 같아요. 다른 나라는 달라요. 용도에 따라 모양이 다 다르지요. 심지어 삽을 하나 사면 대대로 물려주기까지 할 정도의 제품을 만듭니다.”

그래서 농기구, 구호장비, 소방장비, 경찰장비 등 현재 우리나라에서 취약한 부분의 기구나 도구들을 디자인하려고 한다. 자연재해가 빈번해진 지리환경에도 꼭 필요해지는 물품들이기 때문이고 지금 디자인으로는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영길 대표의 ‘캔테이너’와 ‘휴대폰’의 간극은 넓다.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것은 생활에 유용하면서 제품으로서의 격조를 가진 디자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디자인의 한 임무입니다.”

조영길 대표의 명쾌한 대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1125)
  • 대표전화 : 02-780-0990
  • 팩스 : 02-783-25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운정
  • 법인명 : 데일리뉴스
  • 제호 : 종합시사매거진
  • 등록번호 : 영등포, 라000618
  • 등록일 : 2010-11-19
  • 발행일 : 2011-03-02
  • 발행인 : 최지우
  • 편집인 : 정하연
  • 종합시사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종합시사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isanewszine@naver.com
ND소프트